국제 이슈
성장 엔진 식는 韓 경제…‘회색코뿔소’와 ‘블랙스완’이 한국을 덮쳤다
- [경제 대전환의 시대 K기업이 사는길]⑤
이근 한국경제학회 회장 인터뷰
미‧중 압박, 설득과 강공 나눠 대처할 필요
저출산‧고령화, 현금살포 말고 생산적 복지로 해결해야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대한민국호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지난 1년(4분기 연속) 성장률이 사상 처음으로 0.1%를 밑도는 ‘저성장 쇼크’가 나타났다. 지난해 2분기 분기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를 기록한 이후 3분기 0.1%, 4분기 0.1%, 올해 1분기에는 -0.2%를 나타냈다.
한국은행은 4월 24일 올해 1분기 실질 GDP(속보치)에 대해 지난해 4분기보다 0.2%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은이 지난 2월에 예상한 전망치(0.2%)보다 0.4%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發) 상호 관세 공포에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지만, 기업들이 관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암울한 성적표를 마주한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올해 한국 경제가 0.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전망치가 0.7%였던 것을 고려하면 0.2%포인트 낮춘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또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세계적인 경제 석학으로 꼽히는 이근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우리의 위기를 크게 3가지로 요약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장기적 성장 동력 약화 ▲자유무역 질서의 붕괴로 인한 한국 무역 기반 약화 ▲국내 정치 혼란이 가져온 위기 극복 리더십 부재와 정책 추진력 저하가 그것이다.
이근 학회장은 “지금의 위기가 1997년 국제금융기구(IMF) 외환 위기 때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위기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닥쳐온 ‘블랙스완’(Black swan)형 위기로, 충격은 컸지만 단기간에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반면 이번 위기는 ‘회색코뿔소’(Grey Rhino)형 위기라고 했다. 회색코뿔소 이론은 미국의 정책 분석가이자 저술가인 미셸 부커가 2013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소개한 모델이다. 누구나 인지하고 있으며 발생 가능성도 높은데, 그 심각성과 필요 대응을 외면하거나 지연하면서 위기를 초래하는 사건을 뜻한다.
실제 IMF 외환 위기 당시 1997년 4분기부터 성장률 -0.6%, 이듬해 1분기 성장률 -6.7%, 2분기 -0.8%를 기록했지만, 3분기에는 2%를 기록하면서 회복세를 보였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도 단기간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뒤 1~2%의 성장세를 보이며 우리 경제의 회복력을 입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이 학회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단기 처방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 성장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고령화는 일본과 같이 장기 저성장 구조를 고착화시킬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몇 가지 병행 전략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자동화‧디지털화를 통해 줄어드는 노동 공급을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방안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는 것과 함께 정년 연장을 통해 고령층도 건강한 범위 내에서 노동시장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출산 장려 정책을 포함해 주거 비용을 낮추는 실질적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인천시가 추진한 ‘천원 주택’을 이야기를 들었다. 실효성 있는 출산 장려 정책은 결국 주거 안정에서 시작된다”며 “집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말이 괜한 이야기가 아닌데 이런 정책이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인천시의 ‘천원 주택’은 신혼부부 등에 매달 3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최초 2년, 최대 6년까지 거주할 수 있게 하는 주거 복지 정책이다. 하루 평균 임대료가 1000원 수준이어서 ‘천원 주택’이라고 불린다. 지난 3월 예비 입주자 모집 결과 총 500가구 모집에 3681가구가 신청해 7.3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인천 지역 평균 월 임대료가 70만~80만원가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렴한 수준이다.

미‧중 양국 압박이 만든 공동화 문제…다르게 대응해야
이 학회장은 미‧중 영향에 따른 우리나라의 공동화 문제에도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압박을 받아 이중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 경제의 또 다른 구조적 위기”라고 했다. 미국으로부터의 충격은 관세 압력과 자국 내 생산 요구를 통해 나타나고 중국은 내수 침체와 공급과잉으로 한국과 주변국에 대한 저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 기업과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며 빈자리가 생기고, 중국의 값싼 제품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밀어내는 공동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이 양방향의 충격에 각각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발 공동화에 대해서는, 한국이 미국 내에 공장을 짓고 수출이 늘어난 것이 지나친 보조금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외교적으로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는 점, 그로 인해 국내에서 생산된 중간재가 미국 현지 공장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관세 정책의 완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발 공동화에 대해서는 보다 강경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중국 철강 등 과잉 생산품이 한국 시장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 한국도 반덤핑 관세나 비관세 장벽, 피해 업종 보조금 지원 등 다양한 수단을 조합해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정부가 중국산 철강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또 기술 격차 유지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했다. “조선 산업의 경우 중국이 수년째 추격하고 있지만 기술력과 품질에서 확실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어 아직 경쟁력이 있다”며 “배터리,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서도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학회장은 내수 침체와 고용 불안, 청년 실업 등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적 개편 없이는 경제 성장의 제자리걸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까지 내수를 진작시키는 데도 지나치게 신중했으며, 이는 경제적 경직성을 더 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다만 단기적 현금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비, 육아비, 교육비 같은 구조적 비용을 줄여주고 생산적 복지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진짜 내수 진작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청년층 고용 불안에 대해서는 북유럽식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도입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실업 상태에서 단순 현금만 주는 게 아니라, 재교육에 참여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구직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사회보장 정보와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며 “이를 실효성 있게 연결할 수 있는 정책 설계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4명 사상' 시흥 연쇄 흉기피습 차철남 검거, 범행 일체 자백(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
김수현, 광고주 소송 본격화? "받은 소장 2건"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SKT 해킹은 국가 안보 위협의 서막”…中 해커, 美 우방국 통신망 정조준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롯데손보 후폭풍…CJ CGV·신한라이프생명 영향은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배병준 현대바이오 사장 “기술수출, 국내 첫 항바이러스제 개발 이뤄낼 것”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