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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앞의 대형 조형물, 왜 여기 있는 걸까?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서대문역 사이에는 망치를 들고 있는 거대한 사람이 있다. 흥국생명 본사 건물 앞의 ‘해머링맨’ 조형물이다. 아마도 빌딩 앞에 놓인 국내 조형물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해머링맨은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2002년 작품이다. 1980년 뉴욕의 파울라 쿠퍼 갤러리에서 조각으로 처음 전시된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미국 시애틀 등에 이어 일곱 번째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한다. 하지만 그도 쉬는 날이 있다.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5월 1일(근로자의날)에는 망치질을 멈춘다. 이렇게 도심의 대로변을 걷다 보면 늘어선 빌딩 앞에 자리 잡은 조형물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조경 면적이 넓어서 제법 정중하게 널찍한 무대를 차지하고 대접받는 작품이 있고, 큰길에 바로 맞닿은 건물이라 현관 앞에 옹색하게 겨우 자리를 마련한 작품도 있다. 작품의 관리 상태도 제각각이다. 이런 조형물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진흥법 근거한 미술작품 설치 의무멋 내려고 유행처럼 설치하는 건 아니다.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조형물을 세우는 것이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라는 공식적인 명칭도 있다. 이 제도는 1972년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만들어졌다. 문화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예술적인 공간을, 동시에 예술가에게는 창작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다. 1995년부터는 의무화됐다. 근거 법률은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등) 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이하 “건축주”라 한다)는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ㆍ조각ㆍ공예 등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여야 한다. ② (중략)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는 대신에 제16조에 따른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할 수 있다.③ (중략) 미술작품의 설치 또는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금액은 건축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④ (중략) 설치에 사용하여야 하는 금액, 제2항에 따른 건축비용, 기금 출연의 절차 및 방법,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법조문을 보자. 이건 뭐 껍데기만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제1항부터 제4항까지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대통령령’(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 시행령을 살펴보자. 정확한 금액을 산출해 내기 위해서는 ‘별표’까지 확인해야 한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제12조는 연면적 1만㎡(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은 지역과 규모에 따라 전체 건축비의 0.5%에서 0.7% 사이(단, 2만㎡ 초과분에 대하여는 추가금 있음), 건축주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일 때는 건축비의 1% 비용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대신에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도 있다.연면적 1만㎡라니, 잘 와닿지 않는다. 일단 ‘연면적’은 거칠게 말해 모든 층의 바닥 면적을 더한 것이라 생각하면 쉽다. 그렇다면 ‘1만㎡’는 어느 정도 넓이일까? 경술국치 이후 1960년에 미터법이 정식으로 발효되기 전까지 쓰였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평(坪)’ 단위로 환산하면 3025평이다. 약 3000평의 건물! 1층 바닥이 얼마나 넓은 건물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지상 15층 정도의 빌딩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그럼 건축비는 얼마나 들까? 「수도권정비계획법」 제14조 규정에 따라 과밀부담금 부과를 위해 산정해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2025년도 표준건축비는 제곱미터당 238만원이다. 1만㎡로 계산하면 건축비는 238억원이 넘는다. 구체적인 평가액은 필자의 거친 계산과는 다를 것이다. 건물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아무튼 「문화예술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건축물 미술작품의 설치 비용은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크다는 정도만 체감하면 된다. 비즈니스 생태계가 된 건축물미술작품 제도서울이나 광역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지방의 거점 도시들만 살펴봐도 지상 15층 규모의 건물은 드물지 않다. 꽤 흔하다. 필자가 농촌 지역에 살아서 신중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그 정도 빌딩은 널려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다 보니 건축물 미술작품 시장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전체 미술시장의 총 거래금액 6928억원 가운데 건축물 미술작품이 1129억원으로 전체 거래의 16%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경기에 민감한 미술시장의 특성상, 화랑과 경매회사를 통한 개별 작품의 유통량의 변화에 따라 건축물 미술작품이 전체 거래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공공 영역에 국한해서는 건축물 미술작품의 거래량이 늘 가장 많다.우리에게는 거리를 걷다가 무심히 지나치는 조형물일 뿐이지만,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돈이 오가다 보니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어느새 하나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성했다. 하지만 생태계는 의외로 단순하다. 크게 ①건축주 ②미술품 제작업체(작가) ③심의기관(지방자치단체)이다. 이러한 세 당사자의 단순한 구조가 오랜 시간 계속되다 보니 불공정한 관행이 생겼다. ▲건축주와 미술품 제작업체가 가격을 담합한 이중계약 ▲작품가격을 과도하게 높게 책정하거나 특정 작가에게 일감을 몰아주기 ▲화랑과 심의신청 대행사의 심의기관에 대한 로비 ▲학연과 지연에 따른 불공정한 심의 등이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개별 작품의 수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작품설명과 작품형태가 일치하지 않거나 유사한 작품이 우후죽순 설치되는 등의 문제가 오랜 기간 지적돼왔다.투명성 확보를 위한 심의제도 등의 강화1972년 제도 시행 이후로 오랜 기간 쌓여온 잘못된 관행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각 지방자치단체는 수년 전부터 이를 고치려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심의제도를 강화한 것이다. 경기도의 예를 살펴보자.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회는 2019년 10월 29일에 열린 회의에서 심의 대상 미술작품 33건을 모두 부결 처리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부결 사유는 크게 작품가격 과다 책정, 작품성과 독창성 부족,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를 비롯한 공공성 결여였다고 한다. 심사 강화 전인 같은 해 1~8월의 심의 신청작품 336점 중 62.5%인 210점이 통과된 전력에 비교하면 매우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건축물 심의위원회의 위원장 선임 방법, 위원의 위촉 기간, 심의대상, 위원 금지사항, 회의내용 공개 등 심의기관의 구성 자체를 개선했다.서울시 역시 수년 전부터 조금씩 심의위원회의 구성을 조정해 온 이후로 현재까지 개선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및 시행규칙은 최근까지도 개정을 계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심의기관 구성 자체의 개선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심의신청 작품에 대한 부결률도 크게 올랐다. ‘심의장벽’이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미술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지방자치단체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작품이 늘자 미술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부결은 곧 많은 작가의 창작 활동과 생계를 위협한다는 취지이다. 나아가 심의위원회가 지속적으로 부결을 함으로써 건축주들로 하여금 미술작품을 만들지 않고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내도록 유도하는 숨은 목적이 있다는 주장도 했다. 건축주로서는 높은 부결률에 따른 시간과 비용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문화예술진흥기금의 납부를 선택할 테고,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를 불려줘 둘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주, 작가, 심의기관의 세 당사자는 일종의 공공예술 ‘공급자’라고 할 수 있다. 모두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시민에 도움 되는 제도 되려면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공공예술의 향유자, 즉 거리를 걷고 건물 앞을 지나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일반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건축물 미술작품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우선 일단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세종2청사에 세워졌던 조형물 ‘흥겨운 우리가락’은 일명 ‘저승사자’라고 불리며 수많은 민원 끝에 2019년 창고로 자리를 옮겼다. 번쩍거리는 재질의 한복을 입은 인물상이 섬뜩하다는 민원이었다. 조형물을 설치할 비용으로 차라리 조경에 더 힘을 쓰고 시민들이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 등을 더 늘려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당초 제도의 취지대로 문화 향유의 기회가 늘어나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식적으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건축물 미술작품에 대한 생각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바 없으니, 어떤 의견이 다수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지방자치단체가 꾸준히 심의결과와 관리실태를 조사하여 보고하고 운영·관리 개선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정작 미술품을 향유하는 일반 시민들의 의견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시민들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향유자들의 인식과 의견을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평소 오가던 길가에 세워진 조형물을 떠올려 보자. 주변 환경과 어울릴까? 건물의 규모에 적절히 비례하는 작품일까? 이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개요와 문제점도 대충 알게 되었으니, 뭔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큰 도시에 사는 독자라면 오늘내일 출퇴근길에 당장 살펴볼 수도 있겠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5.06.28 10:00

6분 소요
‘14발의 폭탄’…트럼프式 힘을 통한 평화의 명암[특파원 리포트]

국제 이슈

이데일리 미국과 중국 특파원이 현지에서 보고 느낀 생생한 경제·산업 분야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을 전격 폭격한 지 이틀 만에 이란-이스라엘 휴전을 선언하고 “다음 주 이란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폭격→휴전→협상’으로 이어지는 급박한 전개는 전통 외교 문법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작전을 계기로 자신의 외교 전략인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가 유효함을 과시했다. 이른바 ‘트럼프 독트린(Trump Doctrine)’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주간 중동을 휘감았던 전면전 위기는 일단락됐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혼란과 긴장 속에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전술적 승리에 그칠지, 아니면 장기적 평화 질서의 전환점이 될지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명확한 국익→외교 해결→실패 시 군사력…트럼프 독트린 미국은 지난 6월 21일(현지시간) B-2스텔스 폭격기 편대를 투입해 나탄즈, 이스파한, 포르도 등 이란 핵시설 3곳에 대한 정밀 타격했다. 초대형 벙커버스터 GBU-57 14발은 모두 이란 핵개발의 심장부를 겨냥했다. 공격은 예고 없이 이뤄졌고, 지상군은 투입되지 않았다. 민간 피해는 없었다. 이란은 제한적 보복 대응에 그치며 사실상 꼬리를 내렸다. 이란은 이틀 뒤 카타르 내 미군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미사일 14발을 발사해 보복 공격에 나섰지만 대부분 요격됐고,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에 공격 사실을 미리 알리는 등 사실상 ‘통제된’ 보복에 그쳤다. 이후 이란은 미국과 간접 접촉을 시작했고 휴전에 동의했다.미국의 대응은 그가 수년간 강조해온 ‘힘을 통한 평화’ 전략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전술적으로는 협상 테이블을 다시 여는 데 성공했고 이란과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가라앉자 국제 유가는 전쟁 전 수준으로 급락했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민간 피해 없이 사태를 수습한 점은 미국 내 보수 진영으로부터 “가장 이상적인 작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공화당 인사들은 이번 작전을 “교과서적인 승리”라고 자평한다. 핵심 인프라만 정밀 타격하고, 미국 측 병력 손실 없이 협상력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J.D. 밴스 부통령은 “지금 우리는 미국과 세계를 변화시킬 새로운 외교 원칙의 정립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를 ‘트럼프 독트린’으로 명명했다. 트럼프 독트린은 ▲첫째 명확한 미국의 국익을 밝히고 ▲둘째 이를 외교적으로 강하게 해결하려 시도하며 ▲셋째 외교가 실패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해결하고 장기전이 되기 전에 철수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상대방을 흔들기 위해 극단적 요구와 위협을 사용한 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인다’고 그의 협상 방식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이란-이스라엘 사태에서도 그러한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트럼프 독트린이 러시아와 북한을 향해 던지는 간접 메시지는 작지 않다. “미국은 말뿐인 나라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외교적 파급력은 상당하다. 구조적 불안정은 여전…외교적 설계는 빈 공간그러나 모든 평가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현재 상황은 일단 휴전으로 안정화된 듯 보이지만,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구조적 불안정을 내포하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양측은 휴전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합의는 느슨하고 앞날은 불투명하다. 이번 무력 충돌이 더 큰 평화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더 큰 유혈 사태의 전조에 불과할지는 수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과 원심분리기 부품 상당수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 이후에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이란과의 회담’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에서 어떤 의제로 진행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과 이란은 외교적 신뢰가 거의 없는 상태이며 유엔을 통한 중재 역시 현실성이 낮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 협상을 고수할 경우, 이란 측의 국내 정치적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제니퍼 카바나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즈 중동 프로그램 책임자는 “이란이 미국 요구를 수용할 경우 추가 제재나 군사적 응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보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런 위협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개입은 위협의 신뢰도를 높였지만, 동시에 미국의 보장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트럼프의 외교 전략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힘 없는 평화는 없다’는 철학은 냉전 시대 미국 보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1세기 국제 질서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중동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일방적 무력행위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끌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유럽은 다자협상 복원을 요구하고 있고 이란 역시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이 때문에 일관성 부족과 과도한 군사 의존이 오히려 외교적 신뢰를 저해하고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시카 매튜스 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총재는 “트럼프식 접근은 협상 파트너를 압박해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구조적 해법이나 국제적 합의에는 오히려 역행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무력으로 협상의 문을 열었다. 그 파괴력과 독특함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폭탄 뒤의 설계’가 필요하다. 그 공간을 채우는 건 결국 외교와 제도, 그리고 신뢰다. 트럼프 독트린이 진정한 평화 전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이르다.

2025.06.28 09:00

4분 소요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서울 집값 독점 정책의 그림자[김현아의 시티라이프]

부동산 일반

최근 서울의 집값 상승세가 다시 경제의 불안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지방 도시들에 대한 위기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집값 하락은 물론 ▲일자리 부재 ▲인구 감소 ▲공공 인프라 노후화 ▲고령화 ▲외국인으로 채워지는 노동시장 등 복합 위기 속에 ‘소멸’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서울 인구는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서울 부동산의 위력은 여전하다. 서울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기도 도시들은 행정구역은 경기도에 속하지만 서울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정착지가 된지 오래이다. 지방의 쇠퇴와 서울의 집값 문제는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문제였고 하루 이틀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이 과연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공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정책의 민감도는 서울 집값에 훨씬 높았고 우리의 노력과 정책의 초점은 늘 서울이 먼저였다. 최근 서울의 집값 상승세를 두고 혹자는 민주당 정권에서는 집값이 오른다는 신화가 다시 작동되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재개발 재건축을 억제해서 생긴 공급부족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과연 모든 경기가 불경기인데 서울 집값만 오르는 이유가 단순히 공급이 부족해서일까? 오히려 지방의 쇠퇴를 막지 못한 결과는 아닐까?‘똘똘한 한 채’ 열풍과 정책 부작용부터 해결해야 2024년말 한국은행이 집계한 광의통화(M2)는 전년 대비 6.4% 상승했고 최근까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서울의 집값 상승은 강남이나 용산 등 프라임 지역 아파트가 이끌고 있다. 서울 고가 주택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된 것이다. 특히 올해 7월부터 강화될 대출 규제를 피해 ‘규제 전에 돈을 끌어오려는 사람’까지 가세한 것 같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서울 주택의 16.6%가 비(非)서울 거주자의 소유다. 용산·강남·마포 등 프리미엄 지역은 외지인 보유 비율이 20%를 넘는다고 한다. 서울에서 아무리 주택공급을 늘려도 외지인들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 공급은 무용지물이다.서울 집값 문제가 반복되는 데는 정부의 조세 정책 탓도 있다. 공급규제 강화로 재개발‧재건축을 억제한 것도 문제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정책이 야기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도 크게 한몫했다. 다주택자를 범죄자로 낙인찍고 세금을 중과하자 자산가들은 여러 채의 지방주택을 처분하고 서울 고가 아파트에 집중하게 됐다. 지금의 양도세 중과는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적용되므로, 지방에서 여러 채를 보유한 경우보다 서울 한 채에서 양도차익을 얻는 것이 유리하다. 이는 서울 고가주택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고 지방 주택시장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문제는 단순한 대출 규제나 공급 확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대출규제는 오히려 현금자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몰아주는 효과를 낳게 된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도 서울에서 집을 사는 것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만 더 커질 뿐이다. 그래서 서울의 주택공급이나 대출규제 보다 정말 시급한 것은 거래세, 특히 양도차익에 대한 누진과세 구조를 재설계해서 ‘똘똘한 한 채’의 공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보유 주택의 개수와 상관없이 1채의 주택을 보유했다 매각할 때라도 양도차액이 많으면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지방이야 말로 메가시티 전환 시급지난 총선에서 수도권의 핵심 이슈는 바로 ‘메가시티’였다. 서울 주변의 도시들을 서울로 편입시키겠다는 정치권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메가시티 전략이 필요한 곳은 지방이다. ▲인구감소 ▲경제쇠퇴 ▲행정비용의 증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도시들의 행정구역을 재편하는 일이 시급하다. 지방대학도 맥을 같이 한다. 현재 지방 대학의 위기는 지방 쇠퇴의 상징이다.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 학과 폐쇄와 학생 미충원 사태가 빈번해지며 2040년까지 지방 대학 절반 이상이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교수진의 수도권 이탈도 문제이다. 지방대학에서 아무리 훌륭한 교수들을 채용해도 이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 수도권 대학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뜩이나 기업, 학생도 적은 지방대학이 더 이상 연구와 정책 싱크탱크로서의 역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국내에서는 부산·울산·경남의 부울경 메가시티와 대구·경북 통합 등이 추진 중이지만, 아직 실행력이 부족하다. 성공하려면 단순한 행정 통합이 아니라 대학‧기업‧지방정부가 협력하는 혁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메가 시티 전략은 획일적이 아니라 지역별 특성에 맞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공항·철도·항만 등 인프라도 그저 권역별로로 하나씩 유치하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기능을 특화하여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체계는 통합, 도시공간은 압축(compact city)이 필요하다. 특히 지방 메가시티 전략은 대학을 포함하여 지역경제와 산업을 재구성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유럽의 리옹·툴루즈, 독일의 드레스덴·라이프치히는 대학과 연구소를 혁신 클러스터로 육성해 청년층과 기업을 유치하고 성공적인 재생 모델을 만들었다. 일본도 나고야·센다이 등에서 지역거점 국립대학 중심 도시전략을 추진 중이다. 아무리 기업과 공공기관을 이전해도 기관과 사람, 행정과 경제활동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없다면 지역균형발전정책의 효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스마트 시티도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인구 감소지역일수록 주요 공공기관과 인프라들을 권역별로 집중하고, 어디에서나 이용하기 쉽게 접근성을 높여 도시의 각종 비용을 최적화하는 ‘스마트 압축’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풀어내야 할 주택‧도시 부동산 정책은 지방도시에 대한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적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 (다음편에 계속)

2025.06.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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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신세' 여성 정책, 이재명 정부에선 다를까 [스페셜리스트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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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새 정부가 출범했다. 계엄으로 인한 정치적 혼돈과 경제의 덫, 극단적 좌우 사회갈등이 새 정부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이런 마음들이 통했는지,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의 향후 5년간 직무 수행 전망에 대해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무려 70%로 나타났다.이러한 높은 지지율은 국민이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 정부의 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성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여성 정책은 그 어느 정책보다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사회·경제적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정책이었다. 호주제 폐지 등 굵직한 여성 정책은 대통령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추진되기 어려웠다. 그런데 2030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21대 대선이건만, 선거 운동 기간에는 지난 20대 대선에 비해 여성 관련 공약이 두드러져 보이질 않았다. 모든 후보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은 “여전히 구조적 성차별이 계속되고 있어 여가부의 역할을 폐지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하겠다”라고 성 평등 거버넌스 체계 강화를 공약하며 희망의 여지를 남겼다. 그런데 벌써 여성계에서는 실망의 소리가 들린다. 대통령실 수석이나 정무직,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다시 ‘오륙남’(5060 남성)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서둘러 장관 인선에 전문성을 갖춘 여성 장관들을 대폭 임명해 이런 우려들이 정말 우려에 불과했기를 바란다. 성 평등 가족부를 천명한 정부는 성 평등 거버넌스를 위해 지난 정부들과는 조금이라도 개선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지난 3년을 돌아보다윤석열 전 대통령의 여성 정책 핵심은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대선 기간 중 어느 날 갑자기 윤 전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이 일곱 글자가 띄워졌다. 아무 설명도 없었다. 그리고 3년 내내 이 일곱 글자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윤 정부에서 임명된 여성가족부 장·차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여성가족부 폐지였다. 윤 정부 초기, 여성가족부 고위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성가족부 폐지 배경을 설명하고 찬성해달라는 취지였다. 여성단체 설득 등 여성가족부 폐지를 위한 활동을 일일 보고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도 이해는 간다. 폐지를 위해 간부들이 자발적으로 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몸담은 조직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낯선 일들이 반복되더니 드디어 장관을 임명하지 않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발생했다. 부처가 마음에 안 들면 장관을 임명 안 해도 된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기존에 해오던 성 평등 조사결과 발표도 갑자기 중단됐다. 여성가족부는 매년 중앙부처 본부·지자체 과장급, 공공기관 임원의 여성 비율 목표치와 이행실적을 발표해 왔다. 하지만 2022년부터는 발표하지 않았다. 왜 기존 업무를 중단했을까? 업무를 중단한다는 것은 정책 의지의 실종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것은 나만의 억측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새 정부에서는 성인지 감수성과 성 평등 정책 의지가 있는 장관을 빨리 임명하고, 중단됐던 성 평등 업무를 복원시키고, 젠더 갈라치기가 아닌 젠더 통합을 위해 노력해주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청한다. 나아가, 여성가족부의 발전적인 해체와 개편을 통해서 남성과 여성을 함께 포용하고 아우르는 부처, 젠더 갈등을 해소하는 부처, 국민의 사랑을 받는 부처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여성 정책을 넘어 성 평등으로우리나라는 그동안 ‘여성 정책’이라는 틀 안에서 성 평등을 논의해왔다. 여성 정책은 주로 여성의 권익 향상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여성 정책에서 성 평등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더 이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 평등하게 존중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시대의 변화와 함께, 여성 정책에도 조금씩의 변화가 이뤄져 왔다. 지난 2013년 여성발전기본법은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됐다. 내용과 법명 모두 개정됐다. 법 제2조에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참여와 대우를 받고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함으로써 실질적 양성평등 사회를 이루는 것이 기본 이념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특정 성별의 참여율이 현저하게 부진한 분야에 대해서 적극 조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가장 성별 참여가 부진한 분야는 어디일까? 바로 여성의 대표성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2024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정치 권한 분야 146개국 중 72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03위다. 22대 국회에서 여성의원 비율은 20.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다. 2023년 기준 여성 장관 비율은 15.7%(3명), 차관은 13.8%(4명)에 그쳤다. 중앙부처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은 11.7%로 10%대에 머물고 있다. 여성의 경영 참여도 마찬가지다. 성 평등의 첫걸음은 대표성 분야의 동등한 참여라고 본다. 여성계에서는 남녀 동수 내각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주요 직책에 여성을 임명함으로써 성 평등 내각을 위해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고 노력하고 여성가족부 장관은 임명하지 않았지만, 여성 장관을 3명이나 임명했다. 새 정부에서도 성 평등 거버넌스를 위해 전 정부들보다 진일보한 성과들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를 위하여경영 참여 분야도 여성의 참여율이 저조하다. 그래도 다른 분야보다 나은 점은 여성의 이사회 참여 확대를 위해 지난 2022년 여성 이사 의무화제도가 도입됐다는 점이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의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규정해 사실상 1명 이상의 여성 이사 선임을 의무화했다. 사실, 이 법은 특정 성으로만 구성할 수 없다고 돼 있어,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법은 아니지만, 현재 여성의 참여가 저조하므로 여성에게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이 법은 일부에서 오해하는 여성 할당 제도도 아니다. 리더스 인덱스 자료에 의하면,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의 경우 자본시장법 적용 이후 여성 등기임원은 2배 증가했다. 여성 이사 의무화제도의 효과가 톡톡히 나타난 셈이다. 그러나 세부 통계를 들여다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사외이사는 2020년 5.9%에서 2024년 17.2%로 급격하게 증가했지만, 사내이사는 2020년 2.4%에서 2024년 2.7%로 정체돼있다.이에 일각에서는 ‘여성 사외이사 1인 구색 맞추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처럼 새 정부는 여성 사내이사의 증가가 정체돼있는 점,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에만 한정됐다는 문제 제기 등에 대해 향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들의 선례를 보면,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와 관련해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 제도가 있다. 바로 기업공시제도다. 공시는 기업의 사업과 현황 등 모든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투자자나 주주의 의사 결정의 근거 자료가 된다. 앞서가는 나라들은 여성 인적자원의 육성 현황이나 임금 현황 등을 다 공시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도 기업공시제도를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국제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해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지침을 개정해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핵심 지표 중 하나로 포함했다. 기업의 인재 육성 및 관리 정책, 임원의 성별 다양성 및 여성 임원 육성 정책과 계획 등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투자자의 알 권리도 충족이 된다. 제도의 선제적 도입을 위해서는 다양성 공시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혜택 ▲공공 입찰 우선권 ▲정부 지원 사업의 참여 기회 제공 등 인센티브 부여 방안들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공공기관 상근 여성 임원, 5% 불과그런데 자본시장법상 기업공시 의무는 민간기업만 지고 있다. 공공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18년 법 개정안이 제출된 후 2년 반에 걸친 국회 심의를 거치는 동안 가장 많이 나온 질문 중 하나는 기업공시제를 공공기관도 아직 도입하지 않았는데 왜 민간기업이 먼저 시작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는 공공분야가 선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2020년 3월 국무회의에 보고된 여성가족부의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계획’에 따르면 공공기관 여성 임원은 22.1%로 비중이 적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비상근을 제외한, 상근 여성 임원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게다가 상근 여성 임원에 관한 정부 통계는 어느 순간부터 발표조차 되지 않아 찾기도 어려웠다. 민간 통계에 의존해야 했다.2024년 리더스 인덱스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공개된 공공기관 여성 임원 수를 전수 조사해 보도했다. 공공기관 여성 임직원 수는 2019년 35.4%, 2024년 39.3%로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임원 중 여성 비율은 2019년 21.3%에서 2024년 20.6%로 감소했다.세부적으로 임원을 상임과 비상임으로 구분해보니, 2024년 상임이사 총 393명 중 여성은 20명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금융기관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공공기관 여성 임원 확대를 위해 향후 정부에서는 통계를 발표할 경우 상근과 비상근을 분리해 발표하기를 바란다. 언제까지 민간 통계에 의존할 것인가. 나아가 여성 이사 최소 1인 의무화를 도입하는 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 다행스럽게도, 새 정부는 공약으로 공공기관 성 평등을 위한 성별 평등지표 반영 등 조직문화 개선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평등지표 만들기에만 그쳐선 안 된다. 이 지표가 제대로 활용돼야 한다. 지금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여성 임원현황은 두루뭉술한 정성 지표로 돼있다. 변별력이 없으니 있으나 마나다. 정량지표로 변경하든지, 단 1점의 가중치라도 주든지 개선해줄 것을 제안한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여성 정책은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성 평등에 중점을 둬 젠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정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란다. 지난 3년이 여성 정책의 답보 후퇴기였다면, 새 정부에서는 이것을 바로잡고 성 평등을 위해 한 단계 더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해주기를 바란다. 이번 정부의 성 평등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비전과 실질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젠더 갈등을 통합하고, 성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사회 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임을 우리 모두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25.06.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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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 동남아시아에서 찾아야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올해 아세안(ASEAN)이 완성된다. 아세안은 1967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 등 5개국이 창설 구성원으로 출범했다. 1984 브루나이, 1995 베트남, 1997 라오스·미얀마, 1999 캄보디아가 차례로 가입해 현재 10개국이 회원으로 있다.동남아시아는 아세안 10개국 이외에 인도네시아와 섬을 나누고 있는 동티모르까지 총 11개국이 있다. 동티모르는 올해 10월 정식으로 아세안 회원국이 될 예정이다.동티모르의 인구는 130만명,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500달러에 불과하다. 아세안 내에서도 최빈국이지만 동티모르의 가입에는 이유가 있다. 아세안의 지정학적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미·중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세안 국가 방문동남아시아를 완전한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은 바쁘다.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발표하자 미국과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 중국 주석은 4월 14~18일까지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3개국을 이례적으로 방문했다. 말레이시아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이며,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미국으로 부터 상호관세율 46%, 49%를 각각 통보받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방문의 의도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그때 베트남과 ▲공급망 강화 ▲철도 협력 관련 협정 등 45건의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말레이시아와는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신기술을 비롯해 경제·무역·투자 등 여러 분야에서 31개 협정을 체결했다. 캄보디아와도 무역·투자·금융·수자원 등 분야의 37개 협정에 서명했다.5월 21일에 중국은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완료하면서, 소위 ‘3.0버전’을 통해 경제적 결속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정에는 ▲디지털 경제 ▲녹색 경제 ▲공급망 연계성 ▲통관 절차 ▲표준 및 기술 규정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 ▲경쟁 및 소비자 보호 ▲ 중소기업 지원 ▲경제 및 기술협력 등 9개 사항이 추가되었다. 금번 개정된 FTA는 중국중심의 블록화 성격이 강하다. ▲디지털 경제 ▲녹색 경제 ▲표준 및 기술 규정은 중국 중심의 기술 및 표준으로 제정될 가능성이 있다. 아세안의 주요 미래 산업에 있어 중국 의존도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시진핑 주석이 동남아시아를 다녀간 직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4월 27일부터 4일간 베트남과 필리핀을 방문했다. 올해 1월에 이어 3개월 만의 동남아시아 이례적 방문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동남아시아에 관한 관심이 멀어진 사이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외교정책을 통해서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방문 직후 5월 초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이시바 총리의 특사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였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베트남·인도네시아·싱가포르를 방문해 40건 이상의 협정과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프랑스는 이번 방문을 통해 미∙중 경쟁 속 동남아시아의 신뢰할 수 있는 대안적 파트너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 6월 베트남을 방문하였으며, 또 럼 베트남 서기장이 5월 초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 심화를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하였다.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다자외교의 목적으로 인도네시아가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협의체 브릭스(BRICS)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은 파트너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K-컬처에 우호적인 아세안…한국 정부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한국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사이 동남아시아를 둘러싼 주요국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세계 3위의 인구, GDP로는 세계 5위를 자랑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 또한 매우 중요하다. 동남아시아는 중국 다음으로 한국의 두 번째 교역 대상이며, 국내 기업들의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주요 지역으로 꼽힌다.이제 한국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외교적으로 강대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때보다 동남아시아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동남아시아를 외교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도 매우 적절하다.중국의 경우 동남아시아를 자국 상품을 팔기 위한 시장으로 보고 있으며, 남중국해 갈등 등 안보에서도 충돌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중국산 저가 상품이 들어올 때 자국의 산업이 붕괴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다. 그들은 한국을 발전모델로 삼고 있으며, K-컬처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매우 높아져 있다. 한국의 앞선 기술도 배우고 싶어 한다.아세안의 최대 외국인투자(FDI)국가는 중국이 아닌 미국이다. 중국은 미국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그것도 몇 개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의 투자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 자리를 한국이 일부 매어줄 필요도 있다. 한∙아세안 협력기금이 있긴 하지만 이를 개편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모델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개발은행 형태의 협력 금융사를 설립할 때다. ▲투자 ▲한국의 기술 공유 ▲제도 개선 등 통합적∙종합적∙실질적 협력 모델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는 대기업 등 다양한 참여자가 포함되어야 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우리의 진심을 보여주고 진정한 동반자로의 인식을 제대로 심어줄 수 있다면,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동남아시아에서 확보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2025.06.22 09:00

4분 소요
불장, 그리고 위험한 빚투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요즘 중견기업에 다니는 지인의 얼굴이 환하게 펴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주식시장 얘기를 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증시가 상승세를 타면서 투자한 주식도 오름세를 보여 끓던 속이 일부 풀렸다는 겁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종 악재에 떨어지기만 하는 국장을 탈출해 미장으로 옮겨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상황이 360도 바뀌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국장이 그야말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 취임 당일인 6월 4일 2770이었던 코스피는 가파르게 올라 보름이 지난 20일 3000을 뚫었는데요, 2022년 1월 3일(3010.77) 이후 3년 5개월여 만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리스트가 급부상했음에도 주가 상승세를 꺾지 못할 정도로 국장은 불장입니다. 주요 요인으로는 대선 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새 정부의 2차 추경 등 경기부양책 및 증시 활성화 대책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 꼽힙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불법 부정거래 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배당 확대 등 밸류업 정책 추진 등을 재차 강조하며 대선 공약이기도 한 ‘코스피 5000 시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에 화답하듯 증시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는데요, ‘팔자’ 일변도였던 외국인들도 ‘사자’로 돌아서 국장 활황세에 가세했습니다. 심지어 국장에 투자하는 미국의 상장지수펀드(ETF)에도 이달 들어 1조원이 넘는 자금이 순유입됐는데요, 1년 반 만에 월간 기준 최대치입니다. 일부 과열 양상도 보이고 있는데요,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가 늘고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12일 현재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8조8500억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지난 5월 30일 잔고와 비교해 5761억원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고 남은 금액인데,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며 불장에 편승해 위험한 빚투에 나선 투자자가 늘고 있는 겁니다. 이달 들어 은행의 신용대출도 하루 평균 증가액이 지난달 두 배가량으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증시 빚투’ 때문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습니다.워낙 ‘코스피 5000’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 빚투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요,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금 유입으로 숨통을 틀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반면, 지금의 빚투가 크게 한몫 잡겠다는 투기성도 적지 않아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바라는 증시 투자는 명확합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주식 투자를 통해 중간 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면 기업의 자본 조달도 쉬울 것이고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선순환될 것”이라며 “그 핵심 축에 증권시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적인 증시 투자의 모습인데요,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여서 당국은 지금의 빚투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할 겁니다.

2025.06.22 07:00

2분 소요
구글의 눈물, 그리고 네이버·카카오의 마지막 기회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지난 5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린 개발자회의(I/O) 행사에서 구글은 인공지능(AI) 기반 ‘AI 모드’ 검색을 미국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제미나이(Gemini) 2.5 모델을 검색에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전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검색 광고 시장을 제미나이 기반 AI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다. 한때 검색의 제왕이었던 구글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셈이다. 지금 구글은 처절하게 울고 있다. 2022년 12월 오픈AI가 생성형 AI ‘챗GPT’(ChatGPT)를 공개한 이후, 구글 내부에는 ‘구글이 야후처럼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이후 구글은 16년 베테랑인 AI 관련 총괄 부사장이었던 시시 샤오(Sissie Hsiao)에게 챗GPT와 경쟁할 제품을 100일 내에 개발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제미나이 앱과 음성 기술을 총괄했던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에 대해 ‘마라톤을 단거리처럼 전력 질주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승자의 저주- IT 산업의 철칙‘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시장을 지배한 기업들이 기존 성공에 안주하며 혁신을 게을리할 때 찾아오는 재앙이다. 광학 필름 기업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보유하고도 필름 사업에 매몰돼 파산했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전 세계 70%를 차지한 피처폰 시장에 대한 미련으로 제국의 몰락을 자초했다.소니는 LCD, LED 디스플레이 기술을 가졌음에도 평면브라운관 시설투자금을 회수하려다 삼성전자에 의해 선점당해 오늘 날에 이르렀다. 그러던 삼성전자조차 D램 분야에서 당장 돈 되는 사업에 눈이 어두워 올 1분기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졸면 죽는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오픈AI와 퍼플렉시티 같은 후발주자들은 생성형 AI와 대화형 검색을 앞세워 구글의 핵심 영역을 정면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키워드 검색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적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며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검색이라는 구글의 성역이 침범당하고 있는 것이다.구글은 뒤늦게 깨달았다.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스스로 부숴야 한다는 것을. 이에 구글은 제미나이를 전면에 내세워 검색·광고·생산성 도구 등 전 영역에 AI를 심층적으로 통합하고, AI 모드 검색, AI 기반 광고 도구 등으로 소비자와 광고주 모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려 한다. 기존 검색광고 매출에 안주하지 않고 AI 기반의 새로운 검색·광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구글의 처절한 몸부림 앞에서 우리는 국내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네이버는 세계에서 중국,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구글에게 검색 주권을 빼앗기지 않은 나라의 대표 플랫폼이다. 다만 지금처럼 구글의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네이버 역시 상황이 좋지는 않다. 이미 많은 지표들은 네이버의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의 검색 점유율이 2015년 대비 20% 이상 감소한 것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앱 사용시간 순위도 인스타그램에 추월당해 4위로 떨어졌다. AI의 등장은 울고 싶던 네이버에 뺨을 때린 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독점적 지도 서비스 조차 한-미 통상마찰의 희생양이 되어 구글과 진검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물론 네이버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온 서비스 AI’ 전략으로 6년간 1조원을 투자하고, 매출의 20~25%를 연구개발(R&D)에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구글이 전체 사업 모델 자체를 뒤엎고 있는 반면, 네이버의 대응은 여전히 기존 틀 안에서의 개선에 머물러 있어 보인다. 카카오는 어떨까. 카카오가 AX(AI 전환)전략의 핵심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카나나를 비공개 베타 테스트 중이지만 반응이 시원찮다. 카카오의 차기 성장동력이 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차별화 포인트와 수익 창출 방안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구글조차 ‘튜닝한 시빅(혼다의 소형차)으로 강력한 스포츠카와 경쟁했다’고 자조할 만큼 오픈AI가 가져온 충격파는 컸다. 그렇다면 네이버와 카카오의 AI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경운기로 F1 레이스에 나서는 것은 아닐까.한국형 AI플랫폼의 생존 조건은구글의 처절한 자기파괴적 대응은 우리에게 안주하는 순간 몰락이 시작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지켜온 한국의 검색주권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주권은 이제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랐다.생성형 AI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 번째는 기존 캐시카우 사업 모델을 파괴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구글이 그랬듯이 말이다. 두 번째는 플랫폼의 본질을 재정의해야 한다. 네이버가 검색 플랫폼에서 벗어나 ‘AI 경험 플랫폼’으로, 카카오가 ‘메신저 플랫폼’에서 ‘AI 관계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한국어 특화 AI는 변명이 아니라 무기가 돼야 한다. 그리고 그 무기로 구글과 오픈AI와 맞설 전략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세 번째는 사용자 경험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시대는 끝났다. 대화하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제시해야 한다.오픈AI가 한국 법인을 만들며 국내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챗GPT 유료 구독자 수 기준으로 한국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를 차지할 만큼 활용자가 많다. 또 한국 응답자의 70.5%가 챗GPT를 알고 있으며, 50.9%는 실제로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용자들은 이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머뭇거리는 사이 사용자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기회는 여전히 있다. 한국어 데이터의 깊이, 로컬 사용자에 대한 이해, 정부의 AI 정책 지원 등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중요한 것은 이 무기들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구글의 눈물이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2025.06.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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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이라던 한·중 관계, 개선될 일만 남았다?[특파원 리포트]

국제 경제

이데일리 미국과 중국 특파원이 현지에서 보고 느낀 생생한 경제·산업 분야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조기 대선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던 6월 6일 상하이의 한 관광지, 여행객 대상으로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한 가게 벽면에 안경을 쓴 모습의 익숙한 한국인 그림이 보였다. “저 사람은 누구를 그린 것인가”하고 물으니 가게 주인은 멋쩍게 웃으며 “리짜이밍(이재명)”이라고 답했다. 그림 옆에는 바로 전날인 5일 그림을 그렸다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로 발 빠르게 이재명 대통령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다. 상하이 작은 가게까지 퍼진 한국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던 일화다.시진핑 “양국 협력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중국인들은 자국 정치에 무심한 편(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이지만, 외국 정치 상황엔 관심이 많다. 처음 베이징에 왔을 때 만났던 한 택시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도 교도소에 있나”라고 대뜸 물어보기도 할 만큼 이웃나라인 한국 대통령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를 거쳐 이번 대선까지 약 6개월간 계속된 정쟁은 중국에서도 화제였다. 만나는 중국인들은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한국의 정치 사회 상황에 궁금해 했고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될지도 묻는 일도 많았다.중국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다른 나라 내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으로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발언을 삼갔으나 친중 성향을 지닌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를 내심 바라는 모습이었다. 비상계엄 당시 중국 최대 인터넷 포털인 바이두엔 ‘이재명’이란 키워드가 화제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탄핵 위기를 맞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중국을 정치적으로 언급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한층 커졌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지난 2월 “한국 극우 보수 세력이 ‘중국의 (내정) 간섭’ 루머를 날조하고 있다”며 “값싼 정치적 묘기”라며 이례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국내에서 사실상 ‘국민의힘=반중’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면서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중국과 관계 개선이 요원해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4일부터 즉시 대통령으로 업무에 들어가면서 중국 측의 움직임도 기민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4일 오후 “한국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 중·한 양국은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 파트너”라며 축전을 보냈다. 시 주석이 항상 한국 대통령 당선 당일 바로 축전을 보냈던 것은 아니다. 2022년 3월 9일 열렸던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했을 때는 이틀 뒤인 11일에야 축전을 전달했다. 2022년 당시 윤석열 당선인과 시 주석의 전화 통화는 대선이 보름 정도 지난 3월 24일에야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엔 일주일여만인 6월 10일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전화가 연결됐다. 시 주석은 통화에서 “한·중은 떨어질 수 없는 이웃으로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한국과 중국 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도 “양국 우호 협력을 더욱 심화한다”고 화답하면서 예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용’ 내세운 이재명, 미·중 속 줄다리기 어떻게중국 관영 매체들은 윤 전 대통령 재임 시기 동안 한·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며 이 대통령 체제에서는 균형 있는 외교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그동안 중국 정부가 내내 강조했던 대중 외교 정책의 조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한국의 중국 외면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외교는 물론 정무 경험이 없는 윤 전 대통령의 서울대 동창인 정재호 서울대 교수를 중국 대사로 임명하면서 현지 불통 논란도 있었다. 장·차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급 인사와 재계 총수들은 공식적인 중국 방문을 최대한 삼갔으며 혹여나 불가피한 일정이 있으면 외부에 소식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다녀가는 게 관례가 됐다. 그럴수록 사실상 중국 내 외교 및 교류 활동은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게 됐다.중국이 이 대통령 취임을 내심 반기는 이유는 현재 중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와 관련 깊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한국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동맹 체제를 강화하는 데 노력했고 이는 중국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중 관세 전쟁을 촉발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중국의 고민은 더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 전 세계 무역 대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중국에는 100%대 관세를 물리면서 미·중 갈등이 폭발했다.중국은 미국의 광범위한 도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한편 반(反)미국 노선을 구축할 우호국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 주석이 동남아시아 국가를 연이어 순방하고 중국과 중동·아프리카 국가 등과 교류가 활발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이런 가운데 미국과 밀접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은 중국에 중요한 일로 해석된다. 이미 한국 대상 비자 면제 정책을 실시하고 한·중 문화 교류 재개를 검토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한국과 관계 증진을 고민하고 있다는 신호를 지속해서 보내고 있다. 이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본격화하면 한·중 교류는 지금보다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우리 입장에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경제 안보 등 측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중국과 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19.5%(1330억달러)로 미국(18.7%·1278억달러)을 앞선 1위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중국은 최근 이슈인 희토류를 비롯해 니켈이나 비료 등 핵심 자원 생산국이어서 산업 공급망 측면에서도 중요하다.중국의 무비자 정책 후 상하이 등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을 찾는 중국인 여행객은 국내 관광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한·중 교류도 현안이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한한령(중국의 한류 제한령) 해제 여부가 큰 관심이기도 하다.이 대통령은 취임 일성을 통해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외교 정책에도 이런 기조가 반영될 것임을 시사했다. 앞으로 있을 미국과 관세 협상이나 10월말 한국에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이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가늠할 무대는 계속 마련된다. 미·중 패권 경쟁에 놓인 한국이 이런 이벤트에서 얼마나 실리를 취할지도 관전 포인트가 되겠다.

2025.06.15 11:01

5분 소요
韓 스페셜티커피 산업의 지속 가능성 노력들 [심재범의 커피이야기]

전문가 칼럼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UN) 환경 회의에서는 인류 최초의 ‘인간 환경 선언’이 진행됐다. 그리고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로 지정됐다.이와 관련해 한국의 스페셜티커피 산업에서도 환경과 관련된 여러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커피리브레’의 ‘비콥‘(Bcorp) 인증 ▲‘모모스’와 ‘프릳츠 커피’의 다이렉트 트레이드 ▲‘아름다운 커피’의 ‘공정무역 혁신’과 같은 활동들이 그것이다.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6월 5일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개최된 세계 환경의 날 특별 행사를 기념해 스페셜티커피 산업의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활동을 살펴보겠다. 커피리브레의 비콥 인증이 갖는 의미 올 3월, 한국 스페셜티커피를 상징하는 업체인 커피리브레가 국내 커피 산업 최초로, 세계적인 지속 가능성 평가 제도인 비콥(BCorp) 인증을 받았다.비콥 인증은 ‘좋은 기업이 되자’(Use business as a force for Good)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비영리 단체인 ‘B Lab’이 운영하며 이윤을 넘는 목적을 가진 기업 활동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제도다.그동안 ▲파타고니아▲스텀타운커피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 ▲올버즈 ▲클로에 같은 각 분야별 품질과 지속 가능성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비콥 인증을 받아왔다. 커피리브레는 B 임팩트 평가에서 90.5점을 획득해서 인증기준 80점을 상회했다. 커피리브레는 창업 초기부터, 세계적인 품질의 스페셜티커피 농장의 생두를 직거래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한국 스페셜티커피 산업의 성장 이후에도 중남미·아프리카·아시아의 커피 농가와 연결되는 다이렉트 트레이드 방식을 고집하며, 생산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보장하고 소비자에게는 커피의 품종과 프로세싱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꾸준하게 성장했다. 커피리브레의 비콥 인증은 ▲기업의 투명성과 거버넌스 ▲업계 최고의 바리스타 대우 등 노동자 복지 ▲다양성과 포용성을 포함하는 다양한 활동의 커뮤니티 ▲온실가스 배출이나 폐기물 관리와 같은 환경 ▲소비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구체적인 작업들을 인증하면서 자발적인 발표와 의지를 나타내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인증과 차별화된 노력을 인정 받았다.커피리브레의 비콥 인증은 한국과 아시아의 커피 업체 중에서는 첫 번째 시도로, 커피 산업이 사회적인 지속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나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 전주연 바리스타의 모모스커피와 스페셜티커피 산업의 어벤저스로 평가받는 프릳츠 커피의 다이렉트 트레이드가 커피 산업의 품질과 지속 가능성을 꾸준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모모스와 프릳츠로 대표되는 스페셜티커피의 다이렉트 트레이드는 커피와 생산지와의 관계를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확장했다.이들은 ▲온두라스·에티오피아·콜롬비아 농장을 직접 방문하고 ▲생산자와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수익 일부를 생산자 커뮤니티 재투자에 사용하고 있다.
공정무역 커피가 공정 요금을 기반으로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다이렉트 트레이드는 지속적인 품질 투자를 지원하고 품질에 적합한 가격의 커피를 구매한다는 점에서 미묘하게 다르다. 공정무역과 스페셜티커피 산업은 접근법에서 차이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성장한다는 점에서 커피 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요인이다.한국형 공정무역 모델 주목하는 이유비영리 단체 아름다운 가게에서 출발한 아름다운 커피는 한국에서 공정무역 커피 운동을 대중화한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다.2006년 아름다운 커피의 착한 커피 인증 과정은 전 세계의 공정무역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공정무역 시스템은 아름다운 커피의 발전과 함께 동반성장을 기록했으며, 아름다운 커피는 공정무역 시스템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스페셜티커피 품질의 커피 생산 기술지원을 현지에 접목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공정무역 커피로 자리를 잡았다.특히 네팔 지역 협동조합 커피는 아름다운 커피의 대표 사례로, 고산지대의 아라비카 커피를 기반으로 품질과 윤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프로젝트가 실행되고 있다.
아름다운 커피는 ▲여성 농부 리더십 교육 ▲어린이 교육지원 ▲생필품 공급 ▲보건소 개선사업을 병행하고 있다.생산자에게 국제 커피 지수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을 지급하며, 생두 품질은 스페셜티커피협회(SCA) 기준 83점 이상으로 점수로 향상하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를 국내에서 로스팅 후 드립백, 선물세트 등으로 다양하게 판매해 수익의 일부를 다시 생산지로 환원하고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한국형 공정무역 모델로 국제 공정 무역기구에서도 주목받고 있다.반면, 스타벅스를 포함한 일부 프랜차이즈의 경우 ‘C.A.F.E. Practices’와 같은 자체 인증 프로그램이 있지만 ▲인증 신뢰성 부족 ▲노동자의 인권 문제 ▲생산지 커뮤니티 투자 비율 저조와 같은 비판을 기반으로 ‘그린워싱’(Green Washing, 겉보기 친환경)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소비자의 의식 수준이 매우 높아지는 현대사회에서, 허울뿐인 ESG 마케팅은 브랜드의 신뢰를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진정성 있는 변화와 실천 없이는 소비자의 신뢰를 받기가 힘들다.결국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잔에는 수천 명의 노동력과 수년의 재배기간, 수십 차례의 품질테스트가 녹아 있다.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커피 산업에서 지속 가능성을 위한 노력들이 시장과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전달되기를 희망한다.심재범 커피칼럼니스트

2025.06.15 10:02

4분 소요
서울, 亞 2위·세계 6위 국제회의 도시 등극  [E-MICE]

전문가 칼럼

국제컨벤션협회(ICCA)가 2024년 국가·도시별 국제회의 개최 실적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 빈은 지난해 전 세계 도시 중 가장 많은 국제회의(컨벤션)가 열린 ‘세계 1위 컨벤션 시티’에 등극했다. 미국은 압도적 우위로 20년째 1위 자리를 지키며 독주체재를 굳혔다.서울은 세계 6위에 오르며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아시아에선 코로나19 사태로 주춤했던 중국 완연한 회복세 보인 가운데, 태국 방콕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아시아 3대 국제회의 도시로 올라섰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전 세계 도시들 가운데 지난해 국제회의 개최를 통해 가장 큰 경제효과를 누린 도시에 등극했다. 전 세계 컨벤션 업계를 대표하는 ICCA는 2005년부터 매년 전 세계에서 3개국 이상 순회로 열리는 참가자 50명 이상 국제회의를 집계해 ‘국가·도시별 순위’를 공표해 오고 있다. 2024년 개최 실적을 집계한 이번 순위에는 전 세계 160개국, 1659개 도시에서 열린 총 1만 1099건의 국제회의가 포함됐다.ICCA는 “지난해 세계 국제회의 시장은 개최 건수 기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의 84% 수준을 회복했다”며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회복세를 보인 지난해 글로벌 국제회의 시장에선 아시아·태평양과 중동 지역 도시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빈 1위 탈환, 서울 4계단 상승 역대 최고 순위 기록빈은 2023년 프랑스 파리에게 빼앗겼던 세계 1위(154건) 타이틀을 1년 만에 되찾았다. 매년 수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빈과 파리는 유럽 내에서도 국제기구와 학·협회 본부가 많은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빈은 숙명의 라이벌 파리가 하계 올림픽 개최로 주춤한 사이 1위 탈환에 성공했지만, 2위 포르투갈 리스본(153건)과의 격차가 단 1건에 불과해 압도적 우위를 보이진 못했다. 2019년 이후 4년 만인 2023년 세계 1위에 오른 파리는 지난해 하계 올림픽 개최로 행사가 줄면서 순위가 6위로 내려갔다. 파리는 1924년 이후 10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을 경기장 신규 건립 없이 전시컨벤션센터 등 지역 내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친환경 콘셉트로 치렀다.아시아는 싱가포르가 세계 3위(144건)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2023년 단숨에 순위를 8계단 끌어올리며 10위권에 진입한 서울은 1년 만에 다시 순위를 끌어올려 파리와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전까지 서울이 거둔 최고 성적은 2013년 세계 9위였다. 서울은 특히 의학·의료 분야에서 개최 건수 기준 세계 4위에 오르며 강세를 보였다. 의학·의료 분야는 지난해 전체 1만 1099건 국제회의 가운데 가장 많은 2463건(비중 17%)이 열렸다. 서울은 싱가포르와 50건 가까이 벌어졌던 격차도 20건으로 좁히는 데에도 성공했다.방콕은 2023년 15위였던 순위를 1년 만에 8위까지 끌어오리며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2023년까지 싱가포르, 서울에 이어 아시아 3위 자리를 지켰던 일본 도쿄는 3계단 내려간 16위(97건)에 머무르며 방콕에 아시아 3대 국제회의 도시 자리를 내줬다.국내에선 부산이 순위를 5계단 끌어올리며 88위(28건)에 올랐다. 제주(98위)와 인천, 대전(183위), 대구(251위), 경주(367위) 등은 1년 전에 비해 순위가 떨어지며 주춤했다. 울산(432위)과 수원(500위), 광주, 강릉, 포항(614위), 충북, 고양, 전주(856위) 등은 지난해 처음 집계에 포함돼 순위권에 진입했다. 2023년 단 7개 도시만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한국은 1년 새 3.5배 늘어난 24개 도시가 순위권에 진입하며 국제회의 수요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아랍에미리트 두바이(UAE)는 단위 행사당 참가인원이 899명으로 가장 높았다. 두바이 외에 스페인 바르셀로나(4위·142건), 이탈리아 밀라노(14위·100건)도 평균 행사 참가인원이 800명 이상으로 대형 행사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동남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인도네시아 발리(38위·54건)는 행사당 평균 참가인원이 799명으로 세계 4위, 아시아 1위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美 압도적 1위…“국제회의 개최 직간접 효과에 주목해야”미국은 압도적 우위를 보이며 부동의 1위(709건)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탈리아, 스페인은 나란히 2위(635건), 3위(536건)를 유지해 미국과 견고한 3강 구도를 유지했다. 유럽은 국가는 물론 도시 순위에서 상위 10위 안에 7개 국가와 도시가 포함돼 강세를 보였다. 아시아에선 일본이 7위(428건)로 유일하게 상위 10위 안에 포함됐다. 2012년부터 줄곧 상위 10위 안에 머물다 2022년 26위, 2023년 18위로 밀린 중국은 지난해 80건 가까이 실적 급증하면서 11위(249건)로 올라섰다. 2023년 역대 최고인 11위(252건)를 기록한 한국은 지난해 개최 건수가 11건 줄면서 사상 첫 10위권 진입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지난해 세계 각지에서 열린 1만 1099건의 국제회의는 총 134억달러(18조원)의 직접 경제효과를 유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행사 개최비와 등록비, 숙박비, 교통비 등 행사 참가와 직접 관련된 비용 외에 관광, 쇼핑 등 번외 지출은 제외된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2022년 항공료와 호텔비 상승으로 1인당 3832달러(520만원)까지 치솟았던 행사 등록비(참가비)는 3127달러(425만원)으로 내려갔다.지난해 국제회의 개최로 인한 직접 경제효과가 가장 높았던 도시는 3억 6000만달러(5000억원)를 기록한 바르셀로나였다. 개최 건수로 1위에 오른 빈은 직접 경제효과는 2억 4700만달러(3400억원)를 기록하며 전체 5위에 머물렀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가 2억 9000만달러(4000억원)로 전체 3위에 오른 가운데 방콕이 2억 2100만달러(3000억원)로 8위를 기록했다.센틸 고피나스 ICCA 대표는 “국제회의 개최로 인한 직접 경제효과는 전체 경제적 파급효과의 15~20% 수준에 불과하다”며 “국가와 도시의 국제회의 경쟁력, 산업적 가치 평가 시 나머지 8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인프라 확충, 도시 브랜드 제고, 네트워크 구축 등의 간접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06.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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