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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5등급제·학점제 도입…2028학년도 입시, 누가 웃을까

전문가 칼럼

2028학년도 대학입학전형이 현 고1부터 전면 개편되면서 학교 현장과 수험생, 학부모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새롭게 적용되는 5등급제 내신 평가와 고교학점제는 수험생 개인의 선택과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변수가 되는 구조다. 특히 겉으로는 경쟁이 완화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변별력 약화와 상위권 간 동점자 증가, 중위권의 진학 전략 혼란 등 다층적 불확실성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기존 9등급제 내신 체제는 상위 4% 이내를 1등급으로, 11% 이내는 2등급, 23% 이내는 3등급으로 분류했지만, 현 고1부터는 5등급제 기준이 도입돼 1등급은 10% 이내, 2등급은 34% 이내로 확장된다. 얼핏보면 경쟁이 완화된 듯하지만, 실제로는 100명 중 11등부터 34등까지 모두 동일한 2등급을 받게 되므로, 내신 상위권에서 밀려난 학생들에게는 실질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학생 수, 학교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내신 여기에 학교별 학생 수 격차는 내신 유불리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같은 등급이라도 수강 인원과 학교 규모에 따라 그 실질적 의미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2026학년도 기준으로 전국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의 선발 인원은 약 6500명 수준이며, 이들 계열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내신 평균이 최소 1.2~1.4등급 이내여야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5등급제로 내신 등급이 매겨진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모든 과목에서 1.0등급을 받아야 해당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1.0등급은 동점자로 묶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추가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여기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서연고’ 선발 인원까지 합치면 약 1만8000명 규모로, 이 인원에 진입하기 위한 내신 기준은 9등급제에서는 약 1.6등급, 5등급제에서는 1.2등급 안팎으로 추산된다. 인서울권 진입 역시 마찬가지로, 9등급제 기준으로는 2.8등급, 5등급제에서는 1.8등급 이내에 들어야 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온다.이런 가운데 중간고사를 마친 현 고1 학생들은 주요 과목에서 상위 10% 이내에 들지 못한 경우, 조기에 진로 재설정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학교 내신 불이익을 수능이나 비교과 활동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마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실제로 전국 일반계 고등학교 내 표본조사를 보면 내신이 산출되는 과목 기준으로 성적 분포는 고1 때가 42.8%, 고2는 39.3%, 고3은 17.9%를 차지한다. 사실상 고1 1학기만 마쳐도 전체 내신의 절반 가까이를 결정짓는 구조다. 게다가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됨에 따라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기본 과목 외에 각 학교별 선택과목이 본격적으로 입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선택과목은 일반선택, 진로선택, 융합선택 등으로 구분되며, 전국 고교 3년 과정 기준으로 많게는 127개 과목, 적게는 60개 과목이 개설돼 있다. 학생 수가 많거나 자율형사립고일수록 개설 과목이 많은 경향을 보인다. 특히 진로선택과 융합선택 과목이 전체의 50~70%를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인 고교학점제의 무게 중심은 이들 과목에 쏠려 있다.문제는 수강 인원이 내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전국 고3 학생 기준으로 일반고의 41.5%는 100명 미만, 37.8%는 200명대에 불과하며, 400명 이상은 3.1%에 불과하다. 이처럼 학생 수가 적은 학교에서는 특정 과목의 수강 인원이 5명 안팎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선택 과목, 전략적으로 활용해야이 경우 내신 등급 확보 자체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따라서 학생들이 특정 선택과목에 쏠릴 경우, 해당 과목에서 상위권 진입은 더욱 어려워지고, 반대로 수강자가 적어도 내신 등급 자체가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현재 개설 빈도가 가장 높은 진로선택 과목은 세포와 물질대사, 화학반응의 세계, 기하, 미적분II, 물질과 에너지, 생물의 유전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인공지능 기초, 보건, 데이터 과학, 인간과 철학, 국제경제, 정보과학, 커뮤니케이션 공학 등 100가지가 넘는 과목이 개설되고 있다. 융합과목의 경우 스포츠생활, 융합과학탐구, 역사로 보는 현대세계, 기후변화와 환경생태, 과학의 역사와 문화, 여행지리, 윤리문제 탐구, 독서토론과 글쓰기 등이 다수 개설된 대표 과목이다. 또한 사회문제탐구, 실용통계, 소프트웨어와 생활, 인간과 경제활동, 아동발달과 부모, 지식재산일반, 프런티어사이언스 등도 존재해 과목의 스펙트럼은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넓어졌다.이러한 상황에서 내신 상위 10% 이내 학생들은 진로와 적성에 맞는 선택과목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특히 1.0등급 내 동점자가 대거 발생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과목을 선택해, 어떤 방식으로 성취를 증명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수강 인원이 적은 과목에서는 등급 산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어, 전략 수립이 단순히 흥미 기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내신이 10%를 벗어나는 순간 34% 이내의 학생들과 같은 등급인 2등급으로 묶이게 되고, 이는 대학입시 전략 수립에서 치명적인 고민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현재로서는 새로운 내신제와 고교학점제가 결합된 구조에서 입시 결과가 축적된 데이터조차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기 어렵다. 기존의 내신 불리 상황을 수능으로 만회하거나 비교과 활동으로 극복하는 전략도 제약이 많다.결국 급격하게 바뀐 내신 제도와 함께 고교학점제라는 이중 변화 속에서 현 고1은 물론 중3 이하 학생들까지 고등학교 선택과 대학입시 전략 모두에 있어 혼란을 겪는 구조다. 중간고사가 끝난 이 시점, 상위권 학생들도, 중위권 이하 학생들도 모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과 교육 당국은 조속히 현 고1부터 적용되는 입시전형안을 발표해 혼란을 줄여야 할 때다.

2025.05.11 07:00

4분 소요
세계 최대 ‘상하이 오토쇼’에 있는 것과 없는 것[특파원 리포트]

전문가 칼럼

이데일리 미국과 중국 특파원이 현지에서 보고 느낀 생생한 경제·산업 분야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언젠가부터 세계 최대 자동차 전시회로 자리 잡은 중국의 ‘2025 상하이 오토쇼’(상하이 모터쇼)가 막을 내렸다. 자동차의 전동화라는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답게 이번 전시회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각축전이 벌어졌다.이번 상하이 모터쇼에서는 벤츠·BMW·토요타 등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중국 구애가 계속됐다. 무섭게 성장한 중국 토종 업체들도 이에 맞서 신차를 내놓으며 소비자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한국 기업들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중국 시장을 포기한 것일까.최대 전기차 시장 중국, 세계의 관심이 몰렸다상하이 모터쇼가 개막한 지난 4월 23일 중국 상하이 전시회장을 찾았다. 중국에선 매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자동차 전시회를 번갈아 개최하고 있다. 작년에는 베이징에서 전시회가 열려 올해는 상하이 차례였다. 중국의 자동차 전시회는 전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행사다. 전통적인 4대 모터쇼인 디트로이트·제네바·파리·프랑크푸르트 행사가 주요 업체들이 총출동해 앞다퉈 신차를 공개하고 신기술을 뽐내는 자리였다.중국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면서부터다. 다른 나라보다 먼저 전기차 전환을 추진한 중국에서는 전기차 업체들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비야디(BYD)는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판매업체가 됐고 니오·샤오펑·리오토 같은 새로운 업체들도 자리 잡았다. 중국 당국이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전기차 구매를 독려하니 시장도 성장세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신에너지차(전기차 등을 포함)는 약 1300만대로 처음 1000만대를 돌파했다. 세계 경제가 침체하는 상황에서 나 홀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업체들이 놓칠 리 없다.4월 23일 상하이 전시회장은 일반 관람객이 방문하기 전 미디어와 업계 관계자들만 참석하는 기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외신 기자들이 입장을 위해 등록하는 창구에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긴 줄이 늘어섰다.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토요타 등 주요 글로벌 브랜드는 이번 전시회에서 모두 중국 전용 전기차 모델을 선보이며 중국 시장 공략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전시회장에서 눈길을 끈 것은 글로벌 브랜드 수장들이 참석해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언급한 사실이다.BMW 부스에서는 올리버 집세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브리핑을 맡았다. 그는 “중국에서 기술 발전이 일어나고 우리는 중국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토요타 측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 제품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다면 반드시 글로벌 시장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또 하나 놀란 점은 중국 토종 업체들에 대한 높은 관심이다. 이날 전시회장에서 BYD‧리오토‧지커‧니오‧CATL 등 중국 업체들의 브리핑이 진행됐는데 글로벌 브랜드 못지않은 인파가 참석했다. BYD 같은 경우 사전 입장이 허가된 내부 좌석이 꽉 찬 것은 물론 주변에도 매체들과 관람객들이 몰리면서 사실상 이번 전시회의 주연 역할을 맡았다. BYD는 관람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날 전기차 세단인 오션 시리즈 신차 5종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BYD뿐 아니라 대부분 중국 전기차 업체들도 새로운 차종을 속속 선보였다.상하이 모터쇼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전시회에서 업체들이 내놓은 신차는 약 100종이다. 통상 모터쇼의 경쟁력은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신차의 모델 수로 가늠한다. 한곳에서만 100여대의 신차가 공개된다는 건 그만큼 중국 시장의 위상을 드러내는 사례다. 눈에 띄는 신차·기술 없어, 현대차는 장외 선전아쉬운 점도 보였다. 우선 대부분 내놓은 신차들이 ‘중국용’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브랜드가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모델만 선보였을 뿐 전 세계에서 관심을 받는 새로운 신차를 내놓은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중국 업체들도 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했지만 결국 먼저 국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만 내놓을 뿐이었다. 전기차 최대 시장이 중국인만큼 중국 공략이 우선이겠지만 미국과 관세 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돌파하겠다고 자신 있게 외친 CEO를 찾을 수도 없었다.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신기술도 눈에 띄지 않았다. CATL은 5분 만에 배터리를 충전해 52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충전 기술을 선보였으나 이미 지난달 BYD가 5분 충전으로 470km 주행 가능한 차세대 시스템을 선보여 김이 샜다. 화웨이, 샤오미 등 다양한 업체들은 자율주행 기술을 공개했다. 다만 중국은 최근 샤오미 전기차 SU7의 주행 중 사고로 자율주행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상태다. 이를 의식한 듯 늘 모터쇼에 참석하던 레이 쥔 샤오미 회장도 이날은 자취를 감췄다.가장 아쉬웠던 점은 유럽·일본과 중국 본토까지 다양한 국적의 업체들이 참석한 모터쇼지만 한국 기업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전시회에 참가해 중국 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신기술을 공개하는 등 비교적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외 삼성전자가 비즈니스 미팅 등에 주안점을 두고 부스를 마련한 정도다.200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매년 자동차 전시회에 참가했던 현대차는 이번 상하이 모터쇼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현대차가 부진한 중국 시장보다 미국과 인도 등 사업에 주력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이와 별개로 비슷한 시기 상하이에서 중국 전용 전기차를 선보이며 여전히 중국 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면적인 대외 행사 대신 자체 행사로 중국 시장 돌파를 시도한 전략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또한 지켜볼 만한 재미있는 대목이다. 사진02: 4월 23일 중국 '2025 상하이 오토쇼'에서 관람객들이 샤오미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03: 4월 23일 중국 '2025 상하이 오토쇼'에서 관람객들이 지커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04: 사진05: 4월 23일 중국 '2025 상하이 오토쇼' BMW 전시장이 브리핑을 듣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사진06:

2025.05.10 12:01

4분 소요
‘백종원 브랜드’가 다시 살아남을 방법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우리는 그의 멸치국수로 아침을 시작하고, 점심엔 그의 짬뽕을 후루룩거리며 그가 드립한 커피를 마신다. 퇴근 후엔 그의 식당에서 폭탄계란찜과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또 그는 자신이 만든 조미료·된장·햄 등 제품 속 이미지에 셰프복을 입고 등장하며 사람들을 푸근하게 했다. 망해가던 뒷골목의 식당은 그의 마법의 손으로 다시 우뚝 섰고, 그가 손을 들어준 흑백의 요리사들은 우리나라 요식업계의 새로운 별이 됐다. 지난 2월에는 주식시장에 자신의 회사를 상장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국내 식음료 산업의 ‘미다스의 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이야기다.그러던 그가 상장 이후 연일 터지는 악재 속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돼지고기 함량 미달 ‘빽햄’ ▲감귤 맥주 재료 함량 미달 ▲농지법 위반 ▲‘덮죽’ 광고에 ‘국내산 다시마, 새우, 멸치 사용’이라 표기했으나 실제로는 ‘베트남산 양식 새우’가 사용된 사실도 드러났다. 지역축제에서 농약용 분무기에 사과주스를 담아 살포한 영상이 공개돼 식품위생법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냉동탑차로 운반해야 할 생 돼지고기를 일반 용달차로 옮긴 사실까지 알려졌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백종원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회사 측의 ‘시스템 오류’ 해명과 변명만 반복되고 있다.2월에 시작된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거의 매일 새로운 폭로와 고발이 이어지며 브랜드의 위기로 확장되고 있다. 백종원 신화를 만든 미디어들도 등을 돌릴 태세다. 공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후속편이 촬영되고 있는 ‘흑백요리사2’, 티브이엔(tvN) ‘장사천재 백사장’ 시즌3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문화방송(MBC)도 백종원이 출연한 예능 ‘남극의 셰프’ 방영을 연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백종원이라는 스타의 등장백종원 대표는 영동시장 골목에서 1994년 대패삼겹살 개발과 함께 ‘원조쌈밥집’ ‘한신포차’ 런칭 이후로 대한민국 외식업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노력을 해 온 주인공이다. 이후 ‘새마을식당’, ‘홍콩반점’, ‘빽다방’ 등 대중적인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외식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며 식품사업의 귀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진짜 ‘백종원 신화’는 TV에서 시작됐다.‘마이리틀텔레비전’, ‘집밥 백선생’, ‘골목식당’에서 보여준 친근한 이미지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요리법으로 국민 요리사가 됐다. 요리를 어렵게 생각하던 대중에게 ‘이렇게 간단해?’라는 놀라움을 선사했고, 미디어는 그를 ‘국민 요리사’, ‘골목식당의 구세주’로 신화화했다.백종원 대표는 단순한 셰프가 아닌 ‘맛과 정직함의 상징’이 됐다. 그가 강조하는 ‘냉동 음식은 쓰지 않는다’ "국내산 재료를 고집한다’ ‘정성과 신선함이 맛의 비결’ 등의 가치는 신뢰로 이어져 ‘백종원’이라는 브랜드의 핵심이 됐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붙은 제품이라면 이 가치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이처럼 백종원 브랜드의 핵심은 ‘정직함’, ‘신선함’, ‘서민적 대중성’이었다. 그러나 브랜드가 확장되면서 이 가치들이 희석되기 시작했다. ‘백종원’이라는 이름은 모든 제품에 붙지만, 정작 그 제품들이 백종원의 가치관과 철학을 실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부족했다. 결국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셀럽 브랜드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그 셀럽 자신이다. 개인이 브랜드의 에센스가 되는 순간, 브랜드 전체가 그 개인에 의존하게 된다. 문제는 백종원 브랜드의 폭발적 확장이 그가 직접 관리하고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는 점이다. ‘백종원의 빽햄’에서 돼지고기 함량이 미달된 것을 백종원 본인이 직접 체크했다고 믿는 소비자는 없다. 하지만 패키지에 붙은 ‘백종원’이라는 이름에 소비자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신화를 투영한다. 최근 발생한 원산지 표시 위반 등의 논란에 대해 백종원 본인은 침묵하고 회사가 내놓은 사과의 핵심이 ‘시스템 오류’라는 해명이라는 점에서 소비자의 신뢰는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브랜드 위기, 세 가지 해결 방안그렇다면 위기의 브랜드를 어떻게 살려내야 할까. 필자는 세 가지의 방식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백종원’이라는 브랜드 이념의 재정립이다.백종원 브랜드는 단순한 미디어 인지도를 넘어 확고한 브랜드 철학과 이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마사 스튜어트’의 사례는 백종원의 브랜드 위기와 유사하다. 그는 ‘살림의 여왕’으로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다가 주식 내부거래로 수형 생활까지 하고 나왔다. 당연히 그의 이름을 건 브랜드는 위기에 처했다. 다만 그는 출소 이후 소통을 강화하고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였고 다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백종원 대표도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브랜드 핵심 가치를 명확히 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닌, ‘정직하고 신선한 재료', ‘친근함’ 그것이 만드는 ‘신뢰’와 같은 가치를 재확인하고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지난 6일,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백종원 대표는 논란에 대한 직접 사과와 함께 방송출연 중단을 서면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밝혔다. 그러나 향후 어떤 조치와 실천이 뒤따를지 소비자들은 지켜볼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종업원에 대한 내부 브랜딩이다. 고객 접점에서의 브랜드 이념을 실천하는 자는 종업원이다.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실천하는 종업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브랜드는 모래 위의 성에 불과하다. 백종원 브랜드는 ▲모든 직원 ▲가맹점주 ▲협력사가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내재화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또한 백종원 대표도 모든 구성원이 브랜드 가치를 체화할 수 있도록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내부 브랜딩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특히 ▲품질 관리 ▲원재료 선택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과정 ▲고객 응대에서 브랜드 가치가 일관되게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세 번째는 지속가능한 브랜드 시스템의 구축이다. 월트 디즈니는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이자 사명으로 사용한 대표적 사례다. 그는 자신의 사망(1966년) 이후에도 지속되는 브랜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디즈니는 창립자의 가치와 비전을 회사의 DNA로 내재화시켰고, 이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디즈니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이 됐다.백종원도 그의 사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품과 서비스가 일관된 품질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품질 관리 체계를 넘어,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이 모든 비즈니스 결정에 반영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의미한다. 브랜드 확장 시 철저한 가치 정합성 검증, 정기적인 브랜드 감사, 소비자 피드백 시스템 등을 포함해야 한다.셀럽 브랜드의 힘은 그 사람만의 철학과 진정성에서 나온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신화에 기대어 비즈니스 확장에만 집중한 결과, ‘백종원’이라는 브랜드는 이제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브랜드의 본질을 재발견하고 더 강력한 브랜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마사 스튜어트와 월트 디즈니의 사례에서 보듯, 진정성 있는 브랜드는 위기를 넘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2025.05.10 10:04

5분 소요
정부 조직 개편은 왜 하는가…전략과 인재가 답이다 [이근면의 시사라떼]

전문가 칼럼

최근 정부 조직 개편에 관한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다음 정권이 국가를 운영하는 틀인 부처를 어떻게 구축하고 실행하는가에 대한 논란이다. 그러나 단편적이고 당위성 만 거론되며 전체 그림이 제시되지 못함은 국가적으로 어떤 목표로, 어디로 향하고 무엇을 가지고 누가 언제까지 등의 비전이 결여되어 있기에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인 기업 창업자도 확고한 내일과 세계 도전의 꿈이 있는데 국가 운영과 경영에는 도무지 이런 논란조차 없는 현실이다. 그중 오늘이 아닌 내일을 설계하고 백년대계의 목표를 정하는 기능은 그저 실종 상태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 운영을 돌아보면, 장기적인 국가 전략과 인재 운영에 대한 체계적 대비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평가는 공지의 사실이 되었다. 단지 정책의 방향성과 실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가 전략이 백지화되고, 그에 따라 쌓아온 경험과 인재의 활용도 무너진다. 더욱이 이러한 경향은 과거 정부들에 비해서도 점점 더 뚜렷하게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은 10년, 30년 뒤의 국가를 상상하고 준비하고 있는가? 그 미래를 이끌 인재는 어떤 방식으로 양성되고 관리되고 있는가? 현실은 부정적이다. 지금의 정부 운영은 ‘단기 실적 중심’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장기 전략을 수립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인재에 대한 운영 역시 정치적 논리와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인재의 해외 유출, 국가 경쟁력과 직결특히 인재 전략 측면에서 그 문제는 더욱 뚜렷하다. 청년층과 우수 인재들이 공공 영역을 회피하고 있는 현실은 단지 보수체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성과에 기반한 배치와 성장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배치할 수 있는 통합적 운영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고급 기술 인력, 정책 기획 전문가, 글로벌 협상 인재들이 민간으로만 쏠리거나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은 국가 전체의 경쟁력에도 직결되는 문제다.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기술 패권 경쟁 ▲기후 위기 ▲초고령화와 AI 시대라는 거대한 이중 파도 앞에서 준비 없는 무장해제로 밀려날 수 있다. 국정의 일관성은커녕 사회적 충격에 대한 대비도 기대하기 어렵고, 정책의 신뢰성 또한 무너질 것이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직적 접근이 필요하다.첫째, 대통령 직속의 독립적 기구로서 ‘국가미래전략처(가칭)’를 신설해야 한다. 이 조직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10년, 30년 단위의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설계하고, 이를 법제화하여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을 수립하는 부처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되, 정무적 영향에서는 독립되어야 한다.둘째, ‘국가인재전략원’을 설립하거나 기존 인사혁신처의 범위를 과감히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 기관은 정부뿐 아니라 산업계, 학계, 민간 영역의 인재풀을 통합 관리하고, 교육·훈련·배치까지 일원화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재의 분석과 경로 설계, 역량 중심의 인재 등용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긴 역대 정부는 인사 기능을 분산 약화의 길로 운영해 왔다. 공직을 전리품으로 하여 상찬을 수월히 하기 위해서거나 인사 기능을 사유화하거나 전문성을 바라지 않거나 아님, 무지의 결과인 듯하다. 사람의 혁신은 백 년의 미래를 설계한다. 국가적 인재 경영은 종합적 예술의 가깝다. 만인 만색의 사람을 한 방향으로 다양성을 유지하며 국가적 발전과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추구하는 고도의 경영이다. 셋째, 미래를 이끌 리더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공공 펠로우십 제도 및 민관 교류형 로테이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는 단기 행정경험에 그치지 않고, 정책기획과 국제협력, 기술 현장 경험이 결합된 종합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단지 조직을 하나 더 만드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약속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전략이 없고, 인재가 제자리에 서지 못하는 국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반드시 도태된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정치적 루틴에서 벗어나야 가까운 나라 싱가포르의 경우 총리실 산하에 전략기획국(CSA: Centre for Strategic Futures)를 두어 장기 전략 수립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이와 함께 고급 인재를 위해 'Public Service Leadership Programme'을 운영하며, 민관을 넘나드는 경력 개발과 로테이션을 제도화하고 있다. 일본의 내각부 산하 인재기획본부는 각 부처 간 인재 순환과 교육을 조정하고, 일본형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설계하는 조직이다. 특히 기후, 과학기술, 디지털 분야 전문직 공무원의 경력경로를 설계하고 민간과 연계된 파견 시스템도 운영한다.싱가포르와 일본은 정책 전략 수립과 인재 양성은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 구조여야 하며 인재의 전략적 배치는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정치적 루틴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욱이 다음 정권에서 폐기되는 정책을 5년 임기의 정권이 밀어붙이는 관행이 악습으로 되고 있다. 어찌 5년에 이룰 수 있는 것이라 속단할까? 전략이 없는 국가는 위기 앞에서 흔들리고, 인재가 없는 국가는 경쟁에서 무너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적 전환이다. 미래는 선언이 아닌 준비다. 국가는 사람을 키우고 전략을 설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장기 전략과 인재 전략이 일체화된 구조 없이는 다음 세대를 위한 대한민국도 없다.미래를 준비하는 정부는 예산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고, 정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계획을 세운다. 이제는 단기 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을 다음 세대로 연결할 전략적 사고와 인재 운영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때다.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2025.05.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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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위기를 기대로 바꾸려면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재무건전성 위기가 건설업계 전반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건설사의 올해 첫 성적표가 나왔는데요, 예상보다 선방한 결과였습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1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보다 늘었고, 현대건설은 지난해 4분기 적자에서 흑자전환에 성공했습니다. 대우건설과 DL이앤씨는 원가율(매출액 대비 원가)이 개선되며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31.8%, 33%가 각각 증가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공격적인 경영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면서 시장 기대 이상의 실적 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분석했는데요, 내달 조기 대선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하면 상황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주택 공급 확대 등을 공약하고 있어 앞으로 건설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기대로 바뀌기에는 상황이 심각합니다. 건설산업지식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3월 건설업체의 폐업 신고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19.4% 늘어난 160건으로 지난 2011년(164건) 이후 14년 만에 가장 많았는데요, 이들 대부분은 폐업 사유로 ‘사업 포기’를 들었습니다. 위기는 지방 중소건설사를 넘어 시공능력평가(이하 시평) 100위권 기업까지 덮쳐 ▲신동아건설(58위) ▲삼부토건(71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대흥건설(96위) 등이 올해 줄줄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습니다. 시평 30위권 내외 건설사도 높은 부채비율로 경고등이 켜졌는데요, 19위 코오롱글로벌, 20위 금호건설, 36위 HJ중공업 등이 300~600%대에 이르는 부채비율로 재무건전성에 비상이 걸렸습니다.건설업계를 강타한 혹독한 한파는 지방 중심의 미분양 급증으로 인한 공사 미수금 증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정국 불안정으로 건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숨통을 트여주던 공공부문 발주마저 줄어들면서 업계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2월 건설 수주는 총 21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4.9% 줄었는데, 공공부문 수주는 26.9% 감소했습니다. 이는 올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1조원 가량 줄며 공공부문 발주가 급감한 것이 주요인으로 꼽힙니다. 건설업계의 침체는 일자리 감소라는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건설업 취업자는 전년 동기보다 18만5000명(8.7%)이 줄었는데, 2013년 통계 개편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겁니다. 대표적인 서민 일자리로 꼽히는 건설업 일자리 감소는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트리고, 이는 한국 경제의 침체 탈출에도 발목을 잡을 겁니다. 향후에도 건설 경기 침체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어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SOC 중심의 추경 예산의 추가 확보와 함께 오는 6월 도입되는 제로 에너지 의무화, 7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 시행 등 건설업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볼 때입니다. 그래야 ‘건설사 줄도산’ 위기설이 그냥 ‘설’로만 그칠 수 있을 겁니다.

2025.05.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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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의 대표 와인 이름은 왜 '도망친 여인'일까 [와인 인문학]

유통

마치 오래된 책장을 펼치듯, 와인 한 병의 이름과 레이블에는 신화와 역사, 전설과 재미난 일화들이 숨겨져 있다. 한 잔의 와인은 우리를 아득한 과거로 이끌고, 상상 속의 풍경을 눈앞에 펼쳐 놓으며, 와인을 만든 사람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한다.도망친 여인,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시칠리의 와인 명가 돈나푸가타는 아름다운 와인 라벨과 부드럽고 풍부한 향으로 인기가 높다. 와인 이름에 얽힌 이야기 또한 흥미를 끈다. 돈나푸가타는 ‘도망친 여인’이란 뜻이다.가장 대표적인 레드 와인 앙겔리(Angheli)의 라벨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달밤에 어딘가로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림 속의 여인은 19세기초 나폴리와 시칠리를 함께 통치했던 여왕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나폴리를 침공해오자 황급히 시칠리아로 피신하게 되는데, 라벨은 이런 역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시칠리 사람들은 마리아 카롤리나를 사랑했고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녀를 추억하며 이 지역을 돈나푸가타로 부르게 됐는데, 170년의 오랜 양조 역사를 지니고 5대째 포도 농사를 지어온 시칠리의 랄로 가문이 와이너리의 이름을 돈나푸가타로 짓게 된 것이다.마리아 카롤리나는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녀 마리아 테레지아의 5남 11녀 중 10번째 딸이었다. 여동생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그녀는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게 된다. 동생의 죽음에 격분한 언니 마리아 카롤리나는 프랑스에 반대하는 정책을 펼쳐 오다가 결국 왕위를 뺏기고, 나폴레옹 군대에 쫓겨 시칠리로 피신하게 된 것이다. 종국에는 프랑스의 압력으로 남편 페르디난드 4세에게도 버림을 받고 시칠리에서도 쫓겨나 고향인 오스트리아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시칠리는 1860년 이태리 반도 통일 전까지는 이태리와는 다른 역사를 갖고 있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페니키아와 카르타고인들의 지배로부터 시작해 ▲그리스 ▲로마 ▲반달족 ▲동고트족 ▲비잔틴 ▲아랍 ▲노르만 ▲아라곤 ▲스페인 ▲오스트리아와 영국의 지배가 이어져 그야말로 외세에 의한 수난의 역사를 이어왔다.시칠리에는 지금도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스식 신전과 모스크를 개조한 성당, 아랍스타일의 크리스천 벽화, 노르만풍 기둥머리 장식 등 시칠리는 다채로운 문화의 산물로 가득하다. 뉴욕灣을 발견한 탐험가와 베라짜노 와이너리이태리를 대표하는 와인 키안티 클라시코 생산지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베라짜노 와이너리(Castello di Verrazzano)는 이태리 반도가 통일되기 이전 강력한 도시 국가로 서로 경쟁하던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의 무역을 통제하기 위해 그레베(Greve) 계곡 위에 세워져 감시 탑 역할을 한 곳이다.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로 지어졌고 아름다운 르네상스식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이 고성은 7세기경부터 베라짜노 가문의 소유였는데 흥미롭게도 ‘베라짜노’(Verrazzano)는 라틴어 ‘멧돼지’(Verres)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멧돼지의 땅’을 뜻한다. 이름처럼 베라짜노에는 멧돼지를 방목하는 우거진 숲이 있고, 방문객들은 여기서 키운 멧돼지 구이에 베라짜노 와인 한잔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꼽는다.베라짜노 가문이 유명해진 것은 후손 중 한명인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Giovanni da Verrazzano)가 프랑스 왕 프랑수와 1세의 요청으로 신대륙 항로 개척에 나서게 됐고, 범선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그는 1524년 4월경 뉴욕 항을 발견하는 업적을 남기면서다.500년전에 작은 배에 목숨을 걸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뉴욕을 발견한 위대한 항해가였던 베라짜노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뉴욕 사람들은 1964년에 완공된 새로운 다리의 이름을 베라짜노 다리라 불렀다. 이 다리는 스테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와 브루클린(Brooklyn)을 연결하며 뉴욕을 상징하는 다리 중 하나가 됐다.다리의 완공을 앞둔 1963년에 이태리 베라짜노 와이너리에서 벽돌 3개를 가져와 베라짜노 다리 입구에 심어 넣었고, 같은 날 베라짜노 다리에서 3개의 벽돌을 가져가 와이너리 건물 전면을 장식함으로써 두개의 건축물에 동질성을 부여하게 됐다.뉴욕 사람들은 이태리 키안티 지역을 방문하면 꼭 베라짜노 와이너리를 방문한다. 뉴욕을 발견해준 베라짜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3차 원정 기간 중에 식인종들에게 잡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위대한 탐험가이자 항해가의 최후라 하기엔 허망하다는 느낌이 든다.이처럼 와인 한병에는 역사와 전설, 레이블의 디자인에 영감을 준 사건 등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와인의 매력을 더해주고 우리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한 잔의 와인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특별한 여행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2025.05.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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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SKT 유심 해킹 사태, 지금 중요한 것은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충격적입니다.” 국내 1위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이 가입자 유심 정보를 해킹당한 사건에 대한 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이동통신 업계는 경쟁사의 일이 자신들에게도 벌어질 수 있어 문제가 있어도 두둔하는 편인데요,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심각하다’며 우려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입자가 전 국민의 절반가량인 2500만명(알뜰폰 187만명 포함)이나 되는 SK텔레콤에서, 그것도 최고의 보안 체계로 보호되고 있는 메인 서버에 보관된 주요 정보 중 하나인 가입자 유심(USIM) 정보가 탈취당했기 때문입니다. 유심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가입자의 통신 인증 및 식별 정보를 저장하는 칩인데요, 여기에는 모바일 가입자를 식별하는 국제 이동 가입자 식별번호(IMSI), 유심 인증키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만 유심에는 고객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이메일, 결제 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는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SK텔레콤 가입자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유심 교체 대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유심 정보를 불법 복제해 금융 자산을 훔치는 ‘심 스와핑’ 범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입니다. 심 스와핑은 유심 정보를 탈취해 피해자의 통신 단말기로 위장해 각종 금융서비스에 접속해 돈이나 가상자산을 빼가는 범죄인데요, 2022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40여 건의 관련 의심 사례를 수사하기도 했습니다.정부와 SK텔레콤,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심 스와핑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과도한 공포 확산을 경계했습니다. 민관합동조사단은 1차 분석 결과 단말기 고유식별번호(IMEI) 유출은 없어 심 스와핑 우려가 없다고 했고,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공동인증서와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를 많이 활용하는 우리나라에서 유심 정보만으로 금융거래를 직접 수행하거나 신분증을 위·변조하는 등 심각한 2차 피해로 직결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SKT 가입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국가정보원이 정부 전 부처를 비롯해 공공·산하기관을 대상으로 SKT 유심 교체를 권고하고, 금융권에서는 기존 인증 절차에 화상 얼굴 인증을 추가하는 등 보안 조치를 강화하고 있어 불안감은 오히려 더 증폭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장 확실한 해결책인 유심 교체가 재고 부족으로 언제 될지 알 수 없다는 점과 ‘심 스와핑 피해를 봤다’는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까지 나돌고 있어 사회적 혼란까지 야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사실 한국은 스마트폰 하나로 실생활에 필요한 금융거래를 손쉽게 할 수 있어 스마트폰과 관련한 해킹 자체가 매우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번 사건은 스마트폰의 핵심 정보 중 하나인 유심 정보가 탈취당한 만큼 그 엄중함을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향후 책임 소재를 철저히 따져야 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 급한 것은 해킹에 따른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 피해 규모와 해킹 전모를 빠르게 밝혀 그에 따른 조처를 해나가야 불안감과 그에 따른 혼란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SK텔레콤은 이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1위 이통사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025.05.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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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도시정책, 정치가 만든 성장신화와 그늘[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오늘날 도시의 모습은 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도로의 위치, 하늘을 채우는 빌딩의 높이와 배치, 시민들이 숨 쉬는 공원과 공공시설의 형태, 심지어는 도시의 복지수준까지 모두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다. 이처럼 정치권력과 정책은 도시의 공간 구조를 바꾸고 시민들의 삶의 방식을 형성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급속한 발전을 경험한 국가에서는 개발 중심의 정책 결정이 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와 도시 간의 밀착 관계는 긍정적 성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부작용과 한계 역시 적지 않았다. 인구감소와 저성장 시대를 맞이한 지금 고도성장과 개발중심의 도시계획을 가능하게 했던 정책과 정치의 변화가 가장 절실하다. 마침 우리는 도시정책과 정치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조기 대선(2025년)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6년)를 앞두고 있다.한국의 도시계획은 오랫동안 성장과 개발의 신화를 구축해 왔다. 인구와 경제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는 새로운 신도시 건설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도시경제와 시민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인구는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지방도시나 농어촌만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시 정책은 여전히 과거의 성장 논리에 갇혀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곳곳에서 신규 택지 개발과 거대 쇼핑몰을 유치하고, 랜드마크 건설 계획이 추진된다. 도시 복지분야도 마찬가지다. 보여주기식 성과에 급급해 미래를 담보로 잡는 포퓰리즘 정책이 곳곳에서 도시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한 프로젝트로 인해 전국 각지에는 애물단지가 된 시설들이 적지 않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대형 체육관이나 문화회관은 텅 비어 운영비만 축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공항, 철도 등 SOC 투자도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남발되면서 실제 수요와 무관한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들이 양산됐다. 하얀 코끼리란 겉은 화려하지만 활용 가치가 적고 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 처치 곤란한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투자 규모에 비해 유지·운영에 비용이 많이 들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도시계획은 원래 도시의 장기적 비전과 공공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시장(市長)이나 정치인의 임기 내 성과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철마다 대형 개발 공약이 쏟아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의 도시 프로젝트가 백지화돼 예산과 시간이 낭비된다. 정권에 따라 춤을 추니 일관된 장기 전략은 실종되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된다. 예컨대 서울의 뉴타운 개발 사업이나 문재인 정부의 전국적 도시재생사업추진은 초기에는 표심을 얻는 데 활용됐지만, 정권 교체를 거치며 계획이 뒤엉켜 주민들과 참여자들에게 혼란과 손실을 안겼다. 도시정책이 정치 논리에 휘둘릴 때 도시는 거대한 실험장이 돼버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은 더 멀어질 뿐이다. 성장에서 공존으로: 도시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제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다. 더 이상 숫자로 표현되는 성장 지표가 아닌, 시민들의 삶과 도시공동체를 중심으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아이부터 장애인, 노인까지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 ▲젊은 세대가 주거 부담 없이 정착할 수 있는 주택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공동체가 있는 도시 ▲모두에게 개방된 녹지와 여가 공간이 충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개발과 보존이 서로 상반된 목표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유산을 존중하는 개발이 도시 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시민 참여의 폭과 방법도 변화가 필요하다. 도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전문가와 공무원, 정치인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좀 더 도시를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도시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고도성장시대의 빠른 의사결정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민 참여만을 확대한다면, 오히려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도시 문제는 복잡하고 정답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지혜와 경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적인 속도조절 없이, 형식적인 시민 공청회나 목소리 큰 일부만을 대변하는 협의체, 형식적인 주민참여예산과 같은 절차만 늘린다면 문제해결에 다가갈 수 없다.최근 벌어지는 잦은 산불과 도심의 싱크홀 사태는 4~5년 단위 임기 계산을 뛰어넘는 초당적 장기 플랜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정책에는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과 정치인을 선택하는 주민들 역시 미래를 위한 고민보다는 당장의 이익에 흔들린다. 정치인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 시민의 선택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 어쩌면 도시의 미래는 이 물음의 답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역사를 돌아보면 도시의 흥망은 늘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나뉘었다. 산업화 흐름에 발맞춰 도시를 유연하게 재편한 곳은 번영을 이어갔지만, 과거의 방식에 안주한 도시는 쇠퇴를 면치 못했다. 한국의 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더 빨리 더 많이’를 강조하며 고도성장기를 견인했던 개발 중심의 정책은 당시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만능 해법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직면한 인구 구조 변화와 기후위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꾼다면, 충분히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과거에는 정책이나 제도가 미흡해도 정치력이 뒷받침된다면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제도나 정책적으로 가능한 일조차 정치적 대립과 갈등 때문에 추진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날 정치는 힘을 잃고 무력해진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도대체 망가진 정치를 어떻게 회복시켜야 하는가, 정치를 살리는 시민의 선택은 어떤 것인가, 도시를 살릴 정치인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다음편에 계속)

2025.05.03 09:01

4분 소요
MBK의 'LBO 방식' 인수에서 촉발된 홈플러스 신용등급 하락 사태 [김기동의 이슈&로(LAW)]

증권 일반

기습적인 기업회생(법정관리) 신청으로 시장의 혼란을 야기한 홈플러스 사태가 발생한 지 약 50일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홈플러스가 상당 기간 전부터 기업회생 신청을 준비해 온 증거를 확보해 검찰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이 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홈플러스의 사기 처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 사태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신빙성 떨어지는 홈플러스의 주장MBK파트너스(이하 ‘MBK’)가 인수하기 전인 2015년만 하더라도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최상위 ‘A1’단계였다. 그런데 인수 직후부터 등급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10년간 추락한 끝에 올해 2월에는 ‘rating trigger’(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 ‘ABSTB’ 발행 관련 계약이 해지되는 신용등급 조건)에 해당하는‘A3-’까지 강등됐다. 이처럼 거듭된 신용등급 강등은 MBK의 LBO(Leveraged Buyout·차입매수) 인수 방식에서 촉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평가다. 인수 이후 본업 부진과 매출 정체가 지속됐고 거듭된 자산매각으로 인한 장기 성장성까지 저하된 것이 경영난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MBK는 2015년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 인수합병(M&A)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인수 대금 중 절반 이상을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금으로 조달했다. 「한국리테일투자(주) 등 SPC→홈플러스베이커리→홈플러스테스코→홈플러스 본사」 순서로 자회사로 편입했다. 최종적으로 SPC를 제외한 3개 회사가 홈플러스(주)에 합병돼 모든 부채를 떠안게 됐다. 인수 직후부터 MBK는 알짜점포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채무를 상환해 나갔다. 자산의 매각 및 담보 제공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인수금융 상환 및 MBK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금 상환 등에 사용됐다. 그 결과, 더 이상 홈플러스에는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할만한 자산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됐다. 그 과정에서 홈플러스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5년 인수 전 1조6178억원이던 차입금은 10년 만인 2024년 말 5조4620억원으로 늘었다. 상환전환우선주 9786억원을 포함하면 6조 3277억원에 이른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이자 비용으로 2조9329억원을 지출했는데, 같은 기간 발생한 영업이익의 6배를 초과한다. 이러한 부실 경영의 결과,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 연속 연평균 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자 비용, 세금 등까지 포함된 당기순손실은 작년 5743억원에 이르렀다. 부족한 현금 유동성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 ABSTB이다. 2023년 총 1조547억원 규모였던 ABSTB 누적 발행량은 2024년에 1조374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결국 ABSTB와 CP 등 6000억원 규모의 단기금융채권을 결제하지 못하게 되자 지난달 4일 법원에 기업회생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홈플러스는 6개월 단위로 신용평가를 받아 왔다. 그때마다 향후 재무구조나 영업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더 하락될 수 있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또한 2022년 8월 신용등급이 ‘A3’로 하락되기 직전, 신용카드사들과의 계약을 수정해 rating trigger를 ‘A3’에서 ‘A3-’로 낮추기도 했다. 따라서 올해 2월 26일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등급 강등 예정을 통보받은 뒤에야 그 하락을 예견했다는 홈플러스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2011년 LIG건설 및 2013년 동양그룹 사건에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죄가 인정돼 관련자들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발행 당시 재무 상태 및 자금 상황을 고려하면, 발행자는 상환 불능의 위험을 충분히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CP나 회사채를 발행했고, 이는 결국 투자자들을 기망할 수 있음을 용인한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배임죄 여부 따져봐야이 법리는 홈플러스 사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회계 및 자금 관련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하면, 홈플러스가 상환 불능의 위험을 인식한 시점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검찰수사에서는 사기죄와는 별개로 MBK의 홈플러스 인수 구조가 배임죄에 해당하는지도 가려져야 한다. 2006년 대법원이 ㈜신한 매각 사건에서 “반대급부가 제공되지 않는 LBO 방식 기업 인수는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유죄판결을 내린 이후 LBO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이후 담보 제공 외에 합병이나 유상감자, 이익배당 등 거래를 추가하는 방식이 등장했는데, 이와 관련된 사건에서는 줄줄이 무죄가 선고됐다. 상법상 반대주주·채권자 보호를 위한 절차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는 것이 배임죄를 부정하는 주된 논거였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에는 ‘합병형·분배형 LBO’는 배임이 되지 않는다는 판례의 경향이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의 하이마트 인수 사건에서 제동이 걸렸다. ‘합병형 LBO’였던 이 사건에 관하여 1·2심은 기존 판례 경향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020년 대법원은 반대급부 없이 하이마트 자산을 채무 담보로 제공해 대출 기회 제한 및 환가처분 위험 등의 재산상 손해를 입었고, 이는 하이마트보다는 AEP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재무·경영상 효율성 향상을 통해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고, 사모펀드의 투자를 촉진하는 순기능도 존재하는 LBO에 관한 배임죄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홈플러스 사태에서는 그 법적 책임을 분명하게 가리기 위해 MBK의 LBO 인수 방식에 대한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리파이낸싱이나 세일앤리스백 등으로 조달된 자금이 인수 금융과 투자금 상환에 과도하게 지출됨으로서 홈플러스를 형해화시킨 것은 아닌지, LBO 대가로 홈플러스에 실질적인 반대급부가 제공된 것인지 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LBO 허용에 대한 사법적 기준도 보다 명확해지길 기대해 본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2025.04.28 10:01

4분 소요
배민·29CM가 성공한 이유…브랜딩의 ‘핵심경험’ 덕분[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브랜딩의 시대.’ 내가 요즘 피부로 느끼는 브랜딩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는 서점만 가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서점을 방문할 시 습관적으로 경제·경영·마케팅 코너를 반드시 방문하는데요. 심심치 않게 브랜딩 관련 서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왜 브랜딩에 관심이 쏠리는 시대가 온 것일까요? 한때 효율만을 중시하는 마케팅이 성했던 적이 있습니다.(물론 여전히 그것은 유효하며 또 한편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을 통해 즉각적인 매출로 이윤을 올린 기업들도 과거 상당히 많았습니다. 무분별한 마케팅에 지쳐가는 현대인하지만 사람들은 어느새 무분별한 마케팅에 지쳐갔습니다. 그래서 그것의 효율은 이전과 다르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라빛 소가 온다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유명 마케터 그루 세스고딘은 과거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없거나 적었던 시절에는 기업이 물건을 사라고 유인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압박하거나 종용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거의 모든 시장에서 무한한 선택지와 끝없는 대안을 손에 쥐었다. 이런 상태에서 이전처럼 일방적이고 주입식으로 '이 제품을 사라'고 강요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세상에 시끄러운 소리가 많아지면 사람들은 귀를 막는다”라고 말이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창출입니다. 그러니 한 방향에서 막히면 자연스럽게 다른 길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으로부터 기업들이 브랜딩에 예전보다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업마다 생각하는 브랜딩의 정의가 조금씩 다를 순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 기업은 귀를 막은 소비자들의 귀를 다시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브랜딩은 무엇일까요? 브랜딩이란…‘남들과 나를 구분 짖는 나만의 가치를 만드는 행위’ 브랜딩에 대해 얘기하기 전 먼저 목적구매와 가치소비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는 행위를 칼로 무를 자르듯 똑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이 행위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보는데요. 그것이 바로 목적구매와 가치소비입니다. 목적구매란 물건을 사는 행위에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날이 추워졌는데 추위로부터 내 몸을 보호할 옷이 필요해, 혹은 여름에 바다로 휴가를 가서 바다에서 놀고 싶은데 수영복이 없으니 수영복을 하나 사야할 것 같아와 같은 것이 바로 목적 구매, 즉 명확한 목적에 의해서 구매를 행위를 말합니다. 목적구매를 발생시키는 기준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가격과 퀄리티(품질)입니다. 이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짖기 위해서 쌀을 산다고 생각해 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쌀을 살까요? 가격의 차이가 나도 더 좋은 쌀이 있다면 그것을 살 수 있을 것이고, 동일한 품종의 쌀을 사야 한다면 아마도 그 중 더 저렴한 가격의 쌀을 사겠죠. 그래서 기업들은 더 좋은 퀄리티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서 또 노력합니다. 그래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술의 발전으로 퀄리티에 대한 부분이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제품의 가격을 더 낮추기 시작했어요. 경쟁사가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면 소비자는 그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질테니 말이죠. 물론 이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그렇게 서로 할인을 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결국 가격 경쟁을 넘어 가격 전쟁이 발생하고 모든 기업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가치 소비라는 것이 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앞서 얘기했던 가격 경쟁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렇다면 가치소비란 무엇일까요? 소비자가 구매하는 브랜드에 ‘가치’라는 것을 주입하여 판매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소비자는 물건뿐 아닌 그 가치를 함께 소비하는 것이죠. 편의점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시장에는 수 많은 생수 브랜드가 있습니다. 생수를 예로 드는 이유는 무색·무미·무취의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삼다수와 백산수, 아이시스의 물 맛을 구분하는 분이 계신가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물이라고 하는 제품은 목적구매의 카테고리 거의 끝 영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품마다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단지 목이 마르니 마시고 싶다는 목적에 의해서 구매하게 되는 제품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가격이 저렴한 제품, 혹은 늘 마시던 익숙한 제품을 구매합니다. 그런데 에비앙은 어떤가요? 에비앙은 일반적인 생수보다 더 비쌉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에비앙을 구매하고 싶어 합니다. 왜일까요? 에비앙에는 삼다수나 백산수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만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언어로 그것을 얘기한다면 ‘고급스러움’, ‘부유함’과 같은 가치일 것입니다. 그렇게 에비앙은 다른 생수에 비해 가격이 높음에도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가치소비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결국 기업들은 어느새 자신이 만드는 제품의 이름에 이러한 가치를 넣은 것이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는 시대에 가격 경쟁을 피하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방법임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마케터들은 이것을 만드는 것에 고민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브랜드에 이런 가치를 집어 넣는 일, 그래서 가격 경쟁의 시대에서 그것을 뛰어 넘는 방법, 이것이 브랜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가치소비로부터 브랜딩의 개념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목적구매와 가치소비와 연결시켜 볼 때 저는 브랜딩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나를 구분짖는 나만의 가치를 만드는 행위’라고 말입니다. 29CM가 100일 동안 100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추천 아이템을 소개한 프로그램 ‘매일의 가이드’ / 사진:29CM 홈페이지 캡처29CM가 성공한 이유….’스토리텔링’에 성공했기 때문 그렇다면 나만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우선 생각해봐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핵심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경험이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경험입니다. 보통 마케터들은 우리의 제품과 브랜드에 많은 요소들을 넣으려 합니다. 우리 제품은 이것이 좋고 저것이 좋고, 우리 브랜드는 이런 장점이 있는 브랜드이고 저런 장점이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모든 것을 전달하려 하면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중 가장 우리 브랜드의 경쟁력이 될 만한, 또는 우리 브랜드만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억과 경험의 정의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 경험입니다.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고객들이 우리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느낄 수도 있고 우리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단 하나의 무엇을 남겨야 한다면 브랜드에 어떤 경험 요소를 만들어야 할까요? 우리는 이것을 두가지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능적 핵심경험과 감성적 핵심경험입니다. 기능적 핵심경험은 우리 브랜드와 제품이 경쟁사 대비 더 우수한 기능을 중심으로 나만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만의 강점이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강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강점이 경쟁사에 없는 혹은 약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고 해도 나중에 경쟁사가 쉽게 카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만의 강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당장 우리의 존재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기능적 경험이 초반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을 현 시점에서는 남들과 나를 구분지는 우리만의 강점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편집샵 29CM가 좋은 예시입니다. 29CM는 수 많은 커머스 경쟁사들과 다른 어떤 가치를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이라는 핵심 경험입니다. 29CM가 시장에 진입할 당시 온라인 커머스 기업들은 대부분 두가지 기능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는 상품수, 또 하나는 가격이었죠. 이는 너무 당연합니다. 많은 상품들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판매한다는 것은 이커머스의 핵심과도 같으니 말이죠. 하지만 당시 29CM는 인지도도 낮을 뿐더러 규모 역시 작은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다른 경쟁사들 대비 상품의 수도 가격 경쟁력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9CM는 어떤 핵심경험으로 다른 곳과 구분할 수 있는 29CM 만의 가치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다양한 국내외 브랜드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고객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슈퍼잼이라는 영국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프레이저 도허티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요. 당시 영국의 잼들은 대부분 설탕이 많이 들어간 건강에 그리 좋지 않은 잼을 판매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프레이저 도허티는 이때 어릴 때 잼을 만들어준 할머니를 기억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잼은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 과일의 당만으로 잼을 만들었었고 프레이저 도허티는 이것을 시장의 기회로 판단하죠. 그래서 할머니의 레시피를 활용한 슈퍼잼이라는 잼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는데요. 이는 점점 건강한 잼이라는 입소문이 나게 되고 결국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어떤가요? 일반적으로 슈퍼잼이라고 하면 그냥 잼 브랜드의 하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스토리를 알고 나면 한번 이 잼을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29CM 이렇듯 남들과 다른 우리만의 가치를 이 스토리텔링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중심으로 브랜딩을 전개했죠. 타사의 온라인 페이지와 앱이 한 화면에 많은 상품을 보여주지만 29CM는 그 보다는 하나의 브랜드와 그안에 있는 이야기 혹은 우리만이 생각하는 가치를 글로 풍성하게 풀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다른 경험을 전달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중심으로 다양한 브랜딩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 스토리텔링이 바로 29CM의 기능적 핵심경험입니다. B급 감성으로 경쟁력 갖춘 배민 기능적 핵심경험이 우리 브랜드가 가진 기능적 강점이자 차별점이라고 한다면 감성적 핵심경험이란 우리 브랜드만이 가진 감성의 차별점을 얘기합니다. 그럼 감성적 차별점이 왜 필요할까요? 기술은 늘 상향평준화를 이룹니다. 한 브랜드에서 어떠한 기능을 강점의 우위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하고 (이것이 기능적 핵심경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브랜딩을 진행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사람들이 반응한다면 아마 경쟁사에서도 그러한 기술을 도입할 확률이 큽니다. 그것이 해당 브랜드만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능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렇게 그 기능은 시장의 여러 브랜드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으로 변하게 되고, 시장에서 그것은 더 이상 어떤 브랜드만의 기능으로 얘기할 수 없게 되죠. 물론 그것을 먼저 시장에 내세운 기업의 인지도는 높아질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더 이상 우리만의 강점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죠. 그리고 이 기능이란 것이 개발과 연결된 기술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더더욱 쉽게 카피가 됩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감성적 핵심경험입니다. 이는 우리 브랜드만의 이미지와 개성을 만드는 일입니다. 수 많은 경쟁사들 속에서 우리만의 존재감을 기능적으로만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감성적 핵심경험은 여기서 다른 곳과 우리를 구분할 수 있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가장 좋은 예가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의 사례입니다. 사실 배민은 앱 배달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 브랜드입니다. 전화가 아닌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한다는 그 편리함에 시장은 급성장했죠.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시장이 성장하니 다양한 브랜드들이 같은 기능의 배달앱을 내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사실 배민의 아이디어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배민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은 아니다보니 배민과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경쟁자들이 생기면서 배민은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 배민은 그들만의 독특한 브랜딩을 전개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B급 유머코드를 그들의 감성적 경험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배민문방구라는 것을 열고 재미있는 굿즈를 출시하죠. ‘덮어놓고 긁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라는 카드케이스부터 ‘다 때가 있다’라는 제목의 때수건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잡지에 잡지광고를 시작합니다. 기존에 보던 광고의 형식이 아닌 잡지의 성격을 겨냥한 테러(?)를 집행하죠. 예를 들어 머슬 피트니스라고 하는 운동잡지에는 ‘머슬위한 치킨인가’라는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광고를 집행하고요. 올리브라는 음식 잡지에는 ‘고기맛이 고기서 고기지’라는 카피의 광고를 내보내죠. 이러한 배민만의 B급 유머코드는 배민신춘문예라는 이벤트로 그들의 감성적 코드를 더 확장하는데요. 음식을 주제로 시를 짖게 한 것입니다. “치킨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음식을 주제로 한 웃긴 문장들이 다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배민은 다른 경쟁사들이 가지지 못한 배민만의 감성적 영역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포카리스웨트의 일본 시장에서의 광고는 유독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포카리스웨트는 그들의 이미지를 학생들에 투영하여 청량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포카리스웨트는 이온음료이고 시장에서는 이것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은 다수 존재합니다. 이온음료는 땀을 흘린뒤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마시는 명확한 목적성 음료입니다. 대부분의 이온음료 브랜드들은 그것의 이미지를 스포츠와 많이 연결시킵니다. 게토레이나 파워에이드의 예전 광고들을 떠올려보시면 아마도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러한 글로벌 브랜드와 맞서기 위해 이들과 비슷한 이미지 전략을 펼치는 것이 보통의 생각이지만 포카리스웨트는 그들의 이미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스포츠맨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젊은 학생들, 순수하고 젊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하죠. 이는 그들의 컬러인 하얀색과 푸른색의 조화와도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포카리스웨트는 이런 감성을 활용하여 브랜딩을 전개하고 있고 다른 이온음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게토레이와 파워에이드와는 상대적으로 다른 느낌으로 포카리 스웨트를 보게 되는 것이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 핵심경험 때문입니다. 이렇듯 핵심경험은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브랜딩을 전개할 지를 정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고민입니다. 우리가 기능적으로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감성적으로 어떤 것을 고객에게 전달할지에 대한 정의인 것입니다. 그래야 경쟁사들과는 차별화된 우리만의 모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브랜드의 핵심경험은 무엇인가요. 앞서 브랜딩은 남들과 나를 구분하는 나만의 가치를 만드는 행위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브랜드만의 핵심경험을 면밀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얘기했죠. 우리는 종종 브랜딩을 단지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로고를 예쁘게 만들고, 광고를 멋지게 찍고, 소셜미디어에 감도 높은 콘텐츠를 올리며 말이죠. 하지만 진짜 브랜딩은 소비자에게 어떤 경험을 전달해야 하느냐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브랜드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이렇듯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에서 반드시 느껴야 할 감정과 가치를 정의하는 것이 바로, 핵심경험입니다. 핵심경험은 단지 브랜드의 슬로건이나 USP(Unique Selling Point)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접하면서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기능적, 정서적 경험’을 의미합니다.예를 들어 볼보는 기능적으로는 자동차이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들만의 핵심경험은 ‘안전’이죠. ‘무신사’는 단순히 패션 쇼핑몰이지만, 사용자에게 ‘요즘 스타일의 감도’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이렇듯 핵심경험이 잘 정의되어 있으면 브랜딩의 모든 의사결정과 방향이 일관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서비스 뿐 아니라 콘텐츠, 디자인, 마케팅 메시지, 심지어 고객 응대까지 모든 접점에서 같은 경험을 일관되게 줄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 일관성이 쌓일수록 브랜드는 점점 더 남들과 자신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명확한 인상을 갖게 됨은 물론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어떤 핵심경험을 주고 있나요? 그리고 그 경험은 경쟁사와 우리를 차별화시키고, 소비자의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을 만한 경험인가요?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브랜딩은 결국 우리 브랜드만의 ‘이름값’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남들과 나를 구분짖는 기억. 그것을 만드는 것이 결국 브랜딩이고 그것의 시작점에 핵심경험이 있습니다. 브랜딩 디렉터 전우성은….현재 브랜딩 전략 및 컨설팅 회사 시싸이드 시티의 대표다. 삼성전자, 네이버를 거쳐 29CM, 스타일쉐어, 라운즈 등에서 브랜딩 디렉터, 브래딩 총괄 이사를 역임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 '핵심경험론' 등이 있다.

2025.04.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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