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타워 입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애니메이션 속 장면을 재현하며 사진을 찍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호작도 배지와 갓 키링 품절 대란으로 온라인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다.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만들어낸 경제적 파급효과의 생생한 현장이다. 실제 수치는 더욱 놀랍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케데헌’ 방영 이후 외국인 관광객의 37.7%가 K-콘텐츠를 접한 후 한국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응답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반기 관람객 수는 전년 동기대비 64.2%이상 증가했고 상당수는 케데헌이 공개된 지 1개월 이후의 관람객이다. 특히 외국인 관람객은 50% 이상 급증했다. K-푸드 관련 주식시장에서도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대상, 오뚜기, CJ제일제당 등 K-푸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연이어 상승했고, 김치찌개를 비롯한 한국 전통 음식에 대한 글로벌 검색량이 300% 이상 폭증했다.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던 '한류 피크론'에 대한 우려를 한방에 잠재웠다. 케데헌 현상은 한류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 성장의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브랜딩 관점에서 본 한류의 진화이제 우리는 한류를 단순한 문화 상품이 아닌 '문화 브랜드'로 접근해야 한다. 브랜딩 전략 측면에서 케데헌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면 '색다른 친숙함'이라는 핵심 개념이 도출된다. K-POP과 퇴마라는 이질적 소재의 조합, 서울의 현란한 야경과 한옥의 대비, 김치찌개와 현대적 K-POP 문화의 만남. 이 모든 것들이 글로벌 관객들에게는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경험을 제공했다.이는 K-콘텐츠가 이제 단순히 '한국적인 것'을 넘어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한국적 감성'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을 최소화하면서도 고유한 정체성은 유지하는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낸 것이다.팬덤 기반 확장 전략의 새로운 모델케데헌이 보여준 또 다른 브랜딩 차원의 중요한 시사점은 팬덤 기반 지식재산권(IP) 확장의 정석이다. 넷플릭스는 케데헌 세계관을 활용한 의류, 완구 사업은 물론 싱어롱 이벤트를 위한 극장 상영까지 추진하고 있다. 스트리밍 오리지널이 극장으로 간 이례적 사례다. 나아가 넷플릭스는 ‘넷플릭스하우스’ 라는 오프라인 체험공간을 올 연말 완공을 목표로 댈러스와 필라델피아에 개관한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팬덤을 가진 ‘캐데헌’이 주요한 콘텐츠로 다뤄질 것이라는 건 물어볼 필요도 없다.이는 콘텐츠가 단순한 일회성 소비를 넘어 지속적인 가치 창출이 가능한 '살아있는 IP'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K-POP이라는 이미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장르와 결합함으로써 그 확장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는 우리가 이런 확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브랜드 K를 알리는 콘텐츠 자체의 성공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모든 파급효과를 내재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K 브랜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IP 소유권이 만드는 차이: 해리포터 vs 쿵푸팬더케데헌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IP 소유 여부가 만드는 경제적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해리포터와 쿵푸팬더, 그리고 픽사의 코코를 비교해보자. 해리포터는 영국 작가 J.K. 롤링이 창조한 IP다. 책은 물론이고, 영화 시리즈만으로 전 세계에서 77억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해리포터 테마파크, 상품, 뮤지컬, 게임 등으로 확장되면서 총 경제효과는 300조 이상이다. 핵심은 IP 소유자인 롤링과 영국이 이 모든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다는 점이다.반면 쿵푸팬더는 어떨까. 중국 문화를 소재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적으로 18억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IP를 소유한 것은 드림웍스였고, 중국은 문화적 자부심 외에는 얻은 것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중국 내 캐릭터 상품 판매 수익조차 대부분 미국 기업이 가져갔다. 픽사의 코코 역시 마찬가지다. 멕시코의 '디아 데 무에르토스(죽은 자들의 날)' 문화를 다룬 이 작품은 8억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고, 멕시코 관광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IP에서 파생되는 핵심 수익은 여전히 디즈니의 몫이었다.케데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는 원재료를 제공했지만 가공과 유통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은 넷플릭스와 소니픽처스가 담당한 셈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K 브랜드가 지속가능할 지 생각해 볼 일이다. ‘케데헌’이 제시한 새로운 한류의 가능성을 토대로 K 브랜드의 미래를 다시 그려야 하는 이유다. 메이드 위드 코리아의 전략적 의미케데헌은 기존의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에서 '메이드 위드 코리아’(Made with Korea)로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완성품 수출 방식에서 벗어나 기획, 제작, 유통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되, 핵심 지분과 권리는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초현지화(hyper-localization) 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이용자들의 문화적 장벽을 최소화하면서도 세밀한 디테일로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다.케데헌의 성공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국계 제작진과 실제 K-POP 업계 관계자들의 참여로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한국 문화의 면면들을 그려냈고, 제삼자 시선으로 포착한 디테일은 한국인들에게도 신선함을 주었다.넥스트 K로 가는 길케데헌은 K-콘텐츠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 이정표다. 우리 문화의 글로벌 파워를 재확인시켜주는 동시에, 그 파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도 명확히 제시했다.이제 우리는 문화적 자부심을 넘어 산업적 주도권 확보로 나아가야 한다. 케데헌이 증명한 K-콘텐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다음번에는 우리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유통까지 주도하는 '넥스트 K'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케데헌의 성공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돼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