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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앞의 대형 조형물, 왜 여기 있는 걸까?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서대문역 사이에는 망치를 들고 있는 거대한 사람이 있다. 흥국생명 본사 건물 앞의 ‘해머링맨’ 조형물이다. 아마도 빌딩 앞에 놓인 국내 조형물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해머링맨은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2002년 작품이다. 1980년 뉴욕의 파울라 쿠퍼 갤러리에서 조각으로 처음 전시된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미국 시애틀 등에 이어 일곱 번째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한다. 하지만 그도 쉬는 날이 있다.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5월 1일(근로자의날)에는 망치질을 멈춘다. 이렇게 도심의 대로변을 걷다 보면 늘어선 빌딩 앞에 자리 잡은 조형물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조경 면적이 넓어서 제법 정중하게 널찍한 무대를 차지하고 대접받는 작품이 있고, 큰길에 바로 맞닿은 건물이라 현관 앞에 옹색하게 겨우 자리를 마련한 작품도 있다. 작품의 관리 상태도 제각각이다. 이런 조형물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진흥법 근거한 미술작품 설치 의무멋 내려고 유행처럼 설치하는 건 아니다.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조형물을 세우는 것이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라는 공식적인 명칭도 있다. 이 제도는 1972년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만들어졌다. 문화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예술적인 공간을, 동시에 예술가에게는 창작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다. 1995년부터는 의무화됐다. 근거 법률은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등) 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이하 “건축주”라 한다)는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ㆍ조각ㆍ공예 등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여야 한다. ② (중략)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는 대신에 제16조에 따른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할 수 있다.③ (중략) 미술작품의 설치 또는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금액은 건축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④ (중략) 설치에 사용하여야 하는 금액, 제2항에 따른 건축비용, 기금 출연의 절차 및 방법,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법조문을 보자. 이건 뭐 껍데기만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제1항부터 제4항까지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대통령령’(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 시행령을 살펴보자. 정확한 금액을 산출해 내기 위해서는 ‘별표’까지 확인해야 한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제12조는 연면적 1만㎡(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은 지역과 규모에 따라 전체 건축비의 0.5%에서 0.7% 사이(단, 2만㎡ 초과분에 대하여는 추가금 있음), 건축주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일 때는 건축비의 1% 비용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대신에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도 있다.연면적 1만㎡라니, 잘 와닿지 않는다. 일단 ‘연면적’은 거칠게 말해 모든 층의 바닥 면적을 더한 것이라 생각하면 쉽다. 그렇다면 ‘1만㎡’는 어느 정도 넓이일까? 경술국치 이후 1960년에 미터법이 정식으로 발효되기 전까지 쓰였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평(坪)’ 단위로 환산하면 3025평이다. 약 3000평의 건물! 1층 바닥이 얼마나 넓은 건물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지상 15층 정도의 빌딩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그럼 건축비는 얼마나 들까? 「수도권정비계획법」 제14조 규정에 따라 과밀부담금 부과를 위해 산정해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2025년도 표준건축비는 제곱미터당 238만원이다. 1만㎡로 계산하면 건축비는 238억원이 넘는다. 구체적인 평가액은 필자의 거친 계산과는 다를 것이다. 건물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아무튼 「문화예술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건축물 미술작품의 설치 비용은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크다는 정도만 체감하면 된다. 비즈니스 생태계가 된 건축물미술작품 제도서울이나 광역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지방의 거점 도시들만 살펴봐도 지상 15층 규모의 건물은 드물지 않다. 꽤 흔하다. 필자가 농촌 지역에 살아서 신중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그 정도 빌딩은 널려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다 보니 건축물 미술작품 시장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전체 미술시장의 총 거래금액 6928억원 가운데 건축물 미술작품이 1129억원으로 전체 거래의 16%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경기에 민감한 미술시장의 특성상, 화랑과 경매회사를 통한 개별 작품의 유통량의 변화에 따라 건축물 미술작품이 전체 거래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공공 영역에 국한해서는 건축물 미술작품의 거래량이 늘 가장 많다.우리에게는 거리를 걷다가 무심히 지나치는 조형물일 뿐이지만,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돈이 오가다 보니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어느새 하나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성했다. 하지만 생태계는 의외로 단순하다. 크게 ①건축주 ②미술품 제작업체(작가) ③심의기관(지방자치단체)이다. 이러한 세 당사자의 단순한 구조가 오랜 시간 계속되다 보니 불공정한 관행이 생겼다. ▲건축주와 미술품 제작업체가 가격을 담합한 이중계약 ▲작품가격을 과도하게 높게 책정하거나 특정 작가에게 일감을 몰아주기 ▲화랑과 심의신청 대행사의 심의기관에 대한 로비 ▲학연과 지연에 따른 불공정한 심의 등이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개별 작품의 수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작품설명과 작품형태가 일치하지 않거나 유사한 작품이 우후죽순 설치되는 등의 문제가 오랜 기간 지적돼왔다.투명성 확보를 위한 심의제도 등의 강화1972년 제도 시행 이후로 오랜 기간 쌓여온 잘못된 관행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각 지방자치단체는 수년 전부터 이를 고치려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심의제도를 강화한 것이다. 경기도의 예를 살펴보자.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회는 2019년 10월 29일에 열린 회의에서 심의 대상 미술작품 33건을 모두 부결 처리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부결 사유는 크게 작품가격 과다 책정, 작품성과 독창성 부족,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를 비롯한 공공성 결여였다고 한다. 심사 강화 전인 같은 해 1~8월의 심의 신청작품 336점 중 62.5%인 210점이 통과된 전력에 비교하면 매우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건축물 심의위원회의 위원장 선임 방법, 위원의 위촉 기간, 심의대상, 위원 금지사항, 회의내용 공개 등 심의기관의 구성 자체를 개선했다.서울시 역시 수년 전부터 조금씩 심의위원회의 구성을 조정해 온 이후로 현재까지 개선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및 시행규칙은 최근까지도 개정을 계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심의기관 구성 자체의 개선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심의신청 작품에 대한 부결률도 크게 올랐다. ‘심의장벽’이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미술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지방자치단체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작품이 늘자 미술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부결은 곧 많은 작가의 창작 활동과 생계를 위협한다는 취지이다. 나아가 심의위원회가 지속적으로 부결을 함으로써 건축주들로 하여금 미술작품을 만들지 않고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내도록 유도하는 숨은 목적이 있다는 주장도 했다. 건축주로서는 높은 부결률에 따른 시간과 비용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문화예술진흥기금의 납부를 선택할 테고,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를 불려줘 둘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주, 작가, 심의기관의 세 당사자는 일종의 공공예술 ‘공급자’라고 할 수 있다. 모두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시민에 도움 되는 제도 되려면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공공예술의 향유자, 즉 거리를 걷고 건물 앞을 지나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일반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건축물 미술작품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우선 일단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세종2청사에 세워졌던 조형물 ‘흥겨운 우리가락’은 일명 ‘저승사자’라고 불리며 수많은 민원 끝에 2019년 창고로 자리를 옮겼다. 번쩍거리는 재질의 한복을 입은 인물상이 섬뜩하다는 민원이었다. 조형물을 설치할 비용으로 차라리 조경에 더 힘을 쓰고 시민들이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 등을 더 늘려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당초 제도의 취지대로 문화 향유의 기회가 늘어나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식적으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건축물 미술작품에 대한 생각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바 없으니, 어떤 의견이 다수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지방자치단체가 꾸준히 심의결과와 관리실태를 조사하여 보고하고 운영·관리 개선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정작 미술품을 향유하는 일반 시민들의 의견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시민들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향유자들의 인식과 의견을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평소 오가던 길가에 세워진 조형물을 떠올려 보자. 주변 환경과 어울릴까? 건물의 규모에 적절히 비례하는 작품일까? 이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개요와 문제점도 대충 알게 되었으니, 뭔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큰 도시에 사는 독자라면 오늘내일 출퇴근길에 당장 살펴볼 수도 있겠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5.06.28 10:00

6분 소요
‘14발의 폭탄’…트럼프式 힘을 통한 평화의 명암[특파원 리포트]

국제 이슈

이데일리 미국과 중국 특파원이 현지에서 보고 느낀 생생한 경제·산업 분야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을 전격 폭격한 지 이틀 만에 이란-이스라엘 휴전을 선언하고 “다음 주 이란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폭격→휴전→협상’으로 이어지는 급박한 전개는 전통 외교 문법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작전을 계기로 자신의 외교 전략인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가 유효함을 과시했다. 이른바 ‘트럼프 독트린(Trump Doctrine)’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주간 중동을 휘감았던 전면전 위기는 일단락됐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혼란과 긴장 속에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전술적 승리에 그칠지, 아니면 장기적 평화 질서의 전환점이 될지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명확한 국익→외교 해결→실패 시 군사력…트럼프 독트린 미국은 지난 6월 21일(현지시간) B-2스텔스 폭격기 편대를 투입해 나탄즈, 이스파한, 포르도 등 이란 핵시설 3곳에 대한 정밀 타격했다. 초대형 벙커버스터 GBU-57 14발은 모두 이란 핵개발의 심장부를 겨냥했다. 공격은 예고 없이 이뤄졌고, 지상군은 투입되지 않았다. 민간 피해는 없었다. 이란은 제한적 보복 대응에 그치며 사실상 꼬리를 내렸다. 이란은 이틀 뒤 카타르 내 미군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미사일 14발을 발사해 보복 공격에 나섰지만 대부분 요격됐고,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에 공격 사실을 미리 알리는 등 사실상 ‘통제된’ 보복에 그쳤다. 이후 이란은 미국과 간접 접촉을 시작했고 휴전에 동의했다.미국의 대응은 그가 수년간 강조해온 ‘힘을 통한 평화’ 전략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전술적으로는 협상 테이블을 다시 여는 데 성공했고 이란과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가라앉자 국제 유가는 전쟁 전 수준으로 급락했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민간 피해 없이 사태를 수습한 점은 미국 내 보수 진영으로부터 “가장 이상적인 작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공화당 인사들은 이번 작전을 “교과서적인 승리”라고 자평한다. 핵심 인프라만 정밀 타격하고, 미국 측 병력 손실 없이 협상력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J.D. 밴스 부통령은 “지금 우리는 미국과 세계를 변화시킬 새로운 외교 원칙의 정립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를 ‘트럼프 독트린’으로 명명했다. 트럼프 독트린은 ▲첫째 명확한 미국의 국익을 밝히고 ▲둘째 이를 외교적으로 강하게 해결하려 시도하며 ▲셋째 외교가 실패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해결하고 장기전이 되기 전에 철수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상대방을 흔들기 위해 극단적 요구와 위협을 사용한 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인다’고 그의 협상 방식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이란-이스라엘 사태에서도 그러한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트럼프 독트린이 러시아와 북한을 향해 던지는 간접 메시지는 작지 않다. “미국은 말뿐인 나라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외교적 파급력은 상당하다. 구조적 불안정은 여전…외교적 설계는 빈 공간그러나 모든 평가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현재 상황은 일단 휴전으로 안정화된 듯 보이지만,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구조적 불안정을 내포하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양측은 휴전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합의는 느슨하고 앞날은 불투명하다. 이번 무력 충돌이 더 큰 평화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더 큰 유혈 사태의 전조에 불과할지는 수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과 원심분리기 부품 상당수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 이후에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이란과의 회담’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에서 어떤 의제로 진행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과 이란은 외교적 신뢰가 거의 없는 상태이며 유엔을 통한 중재 역시 현실성이 낮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 협상을 고수할 경우, 이란 측의 국내 정치적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제니퍼 카바나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즈 중동 프로그램 책임자는 “이란이 미국 요구를 수용할 경우 추가 제재나 군사적 응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보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런 위협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개입은 위협의 신뢰도를 높였지만, 동시에 미국의 보장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트럼프의 외교 전략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힘 없는 평화는 없다’는 철학은 냉전 시대 미국 보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1세기 국제 질서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중동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일방적 무력행위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끌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유럽은 다자협상 복원을 요구하고 있고 이란 역시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이 때문에 일관성 부족과 과도한 군사 의존이 오히려 외교적 신뢰를 저해하고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시카 매튜스 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총재는 “트럼프식 접근은 협상 파트너를 압박해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구조적 해법이나 국제적 합의에는 오히려 역행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무력으로 협상의 문을 열었다. 그 파괴력과 독특함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폭탄 뒤의 설계’가 필요하다. 그 공간을 채우는 건 결국 외교와 제도, 그리고 신뢰다. 트럼프 독트린이 진정한 평화 전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이르다.

2025.06.28 09:00

4분 소요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서울 집값 독점 정책의 그림자[김현아의 시티라이프]

부동산 일반

최근 서울의 집값 상승세가 다시 경제의 불안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지방 도시들에 대한 위기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집값 하락은 물론 ▲일자리 부재 ▲인구 감소 ▲공공 인프라 노후화 ▲고령화 ▲외국인으로 채워지는 노동시장 등 복합 위기 속에 ‘소멸’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서울 인구는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서울 부동산의 위력은 여전하다. 서울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기도 도시들은 행정구역은 경기도에 속하지만 서울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정착지가 된지 오래이다. 지방의 쇠퇴와 서울의 집값 문제는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문제였고 하루 이틀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이 과연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공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정책의 민감도는 서울 집값에 훨씬 높았고 우리의 노력과 정책의 초점은 늘 서울이 먼저였다. 최근 서울의 집값 상승세를 두고 혹자는 민주당 정권에서는 집값이 오른다는 신화가 다시 작동되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재개발 재건축을 억제해서 생긴 공급부족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과연 모든 경기가 불경기인데 서울 집값만 오르는 이유가 단순히 공급이 부족해서일까? 오히려 지방의 쇠퇴를 막지 못한 결과는 아닐까?‘똘똘한 한 채’ 열풍과 정책 부작용부터 해결해야 2024년말 한국은행이 집계한 광의통화(M2)는 전년 대비 6.4% 상승했고 최근까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서울의 집값 상승은 강남이나 용산 등 프라임 지역 아파트가 이끌고 있다. 서울 고가 주택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된 것이다. 특히 올해 7월부터 강화될 대출 규제를 피해 ‘규제 전에 돈을 끌어오려는 사람’까지 가세한 것 같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서울 주택의 16.6%가 비(非)서울 거주자의 소유다. 용산·강남·마포 등 프리미엄 지역은 외지인 보유 비율이 20%를 넘는다고 한다. 서울에서 아무리 주택공급을 늘려도 외지인들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 공급은 무용지물이다.서울 집값 문제가 반복되는 데는 정부의 조세 정책 탓도 있다. 공급규제 강화로 재개발‧재건축을 억제한 것도 문제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정책이 야기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도 크게 한몫했다. 다주택자를 범죄자로 낙인찍고 세금을 중과하자 자산가들은 여러 채의 지방주택을 처분하고 서울 고가 아파트에 집중하게 됐다. 지금의 양도세 중과는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적용되므로, 지방에서 여러 채를 보유한 경우보다 서울 한 채에서 양도차익을 얻는 것이 유리하다. 이는 서울 고가주택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고 지방 주택시장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문제는 단순한 대출 규제나 공급 확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대출규제는 오히려 현금자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몰아주는 효과를 낳게 된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도 서울에서 집을 사는 것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만 더 커질 뿐이다. 그래서 서울의 주택공급이나 대출규제 보다 정말 시급한 것은 거래세, 특히 양도차익에 대한 누진과세 구조를 재설계해서 ‘똘똘한 한 채’의 공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보유 주택의 개수와 상관없이 1채의 주택을 보유했다 매각할 때라도 양도차액이 많으면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지방이야 말로 메가시티 전환 시급지난 총선에서 수도권의 핵심 이슈는 바로 ‘메가시티’였다. 서울 주변의 도시들을 서울로 편입시키겠다는 정치권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메가시티 전략이 필요한 곳은 지방이다. ▲인구감소 ▲경제쇠퇴 ▲행정비용의 증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도시들의 행정구역을 재편하는 일이 시급하다. 지방대학도 맥을 같이 한다. 현재 지방 대학의 위기는 지방 쇠퇴의 상징이다.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 학과 폐쇄와 학생 미충원 사태가 빈번해지며 2040년까지 지방 대학 절반 이상이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교수진의 수도권 이탈도 문제이다. 지방대학에서 아무리 훌륭한 교수들을 채용해도 이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 수도권 대학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뜩이나 기업, 학생도 적은 지방대학이 더 이상 연구와 정책 싱크탱크로서의 역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국내에서는 부산·울산·경남의 부울경 메가시티와 대구·경북 통합 등이 추진 중이지만, 아직 실행력이 부족하다. 성공하려면 단순한 행정 통합이 아니라 대학‧기업‧지방정부가 협력하는 혁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메가 시티 전략은 획일적이 아니라 지역별 특성에 맞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공항·철도·항만 등 인프라도 그저 권역별로로 하나씩 유치하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기능을 특화하여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체계는 통합, 도시공간은 압축(compact city)이 필요하다. 특히 지방 메가시티 전략은 대학을 포함하여 지역경제와 산업을 재구성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유럽의 리옹·툴루즈, 독일의 드레스덴·라이프치히는 대학과 연구소를 혁신 클러스터로 육성해 청년층과 기업을 유치하고 성공적인 재생 모델을 만들었다. 일본도 나고야·센다이 등에서 지역거점 국립대학 중심 도시전략을 추진 중이다. 아무리 기업과 공공기관을 이전해도 기관과 사람, 행정과 경제활동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없다면 지역균형발전정책의 효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스마트 시티도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인구 감소지역일수록 주요 공공기관과 인프라들을 권역별로 집중하고, 어디에서나 이용하기 쉽게 접근성을 높여 도시의 각종 비용을 최적화하는 ‘스마트 압축’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풀어내야 할 주택‧도시 부동산 정책은 지방도시에 대한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적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 (다음편에 계속)

2025.06.28 06:00

4분 소요
“영수증 리뷰하면 경품” 대구 남구, 맛길 SNS 이벤트

여행

침체된 골목 외식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이색 이벤트가 대구 남구에서 펼쳐진다. 대구 남구청은 오는 7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남구 맛길 SNS 홍보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26일 밝혔다.이번 이벤트는 앞산 맛둘레길, 앞산카페거리, 안지랑곱창골목, 물베기거리 등 외식업소에서 식사한 후,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에 영수증 리뷰와 음식사진을 등록하면 참여할 수 있다. 이후 남구청이 운영하는 대구남구맛집 메타버스 이벤트 참여하기 메뉴에서 인증하면 자동 응모된다.대상 업소는 총 210개소이며, 방문·포장·배달 모두 가능하다. 월별 중복 참여도 허용되며, 지역민은 물론 외부 방문객에게도 참여 기회가 열려 있다. 참여자 중에는 매달 최다 리뷰왕(모바일 쿠폰 10만원), 정성 리뷰왕(5만원) 각 1인을 선정하고, 추첨을 통해 2만원 모바일 쿠폰 30매도 지급한다.조재구 남구청장은 "이번 남구 맛길 SNS 홍보 이벤트를 통해 외식업소의 매출 상승 등 침체된 골목 외식상권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며, "앞으로도 외식업소에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다양한 사업으로 골목 외식상권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홍성철 기자 thor0108@edaily.co.kr

2025.06.26 17:39

1분 소요
영천 와인터널, SNS 타고 입소문..."더위 피해 들어갔다 와인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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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에 위치한 영천와인터널이 국산 와인의 매력을 알리는 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완연한 여름,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터널 안은 연중 16도를 유지한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와인을 즐기며 무더위를 피하고 있다.지난 2009년 문을 연 영천 와인터널은 최근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올 4월 MZ세대 취향을 반영한 문화공간으로 새로 문을 열었다. 영천시는 이번 개편에서 "SNS 세대의 감성을 반영한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했다"고 밝혔다.길이 약 100m, 폭 4m에 이르는 터널 내부는 연중 16도 내외의 쾌적한 온도와 70%의 습도를 유지하며, 와인 숙성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터널 한켠에 마련된 와인갤러리는 영천지역 14개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50여 종의 와인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무료 시음도 하고, 평소 접하기 어려운 와인 관련 서적들도 읽어볼 수 있어 와인 애호가는 물론 일반 방문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한편, 영천시는 전국 최대 포도 주산지 중 하나다. 2007년 와인산업 발전 선포식을 계기로, 현재 14개 와이너리가 운영 중이다. 영천 와인은 베를린 와인트로피, 아시아 와인트로피 등 세계적인 와인 품평회에서도 잇따라 수상하며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최기문 영천시장은 "곧 과일의 고장 영천에서 포도 수확철이 시작된다. 이 시기에 영천의 와이너리에서 운영 중인 와인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포도 따기 체험과 와인 담그기 등 다채로운 와인 관련 체험을 즐겨보시길 추천드린다"고 전했다.홍성철 기자 thor0108@edaily.co.kr

2025.06.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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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원도심 역사문화축 재편... "1,300억 투입해 달성토성·경상감영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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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원도심이 달성토성과 경상감영 복원을 통해, 잊혀진 역사성을 되찾는다. 대구시는 '국가사적 달성·경상감영 종합정비계획'을 최종 확정하고, 내년부터 사업에 착수한다고 23일 밝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달성토성은 261년 축조된 삼국시대 토성이다. 고대 성곽의 구조와 특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 유산이지만, 오랜 세월 공원과 동물원으로 활용되면서 정체성이 크게 훼손됐다. 이에 대구시는 655억 원을 투입해 달성토성의 원형을 복원하고 열린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 오는 2034년까지 동물원 이전과 정밀 발굴조사, 성체 및 내부 복원, 달성역사관·야외전시관·잔디광장 조성 등이 단계적으로 추진된다.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경상도의 정치·행정·문화 중심지로 오늘날 대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핵심 유산이다. 대구시는 총 662억 원을 투입해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 및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 국채보상로와 바로 연결되는 진입 동선을 확보하고 일부 관아시설을 복원하는 한편, 현재 달성공원에 있는 감영 정문인 관풍루도 원위치로 이전하는 등 경상감영의 위상을 재현하게 된다.이번 사업은 총 사업비 1,300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단순한 문화재 복원을 넘어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도심 전체를 역사문화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두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면 달성–경상감영–근대골목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 클러스터가 형성돼, 대구 원도심은 고대에서 근현대까지의 시간을 아우르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김정기 시장 권한대행 행정부시장은 "이번 사업은 단순한 문화유산 복원이 아니라,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되살리고, 미래세대에 물려줄 품격 있는 역사문화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출발점이다"며,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자산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원도심 일원을 살아 숨 쉬는 역사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홍성철 기자 thor0108@edaily.co.kr

2025.06.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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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 1호점, 테마형 문화거리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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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가 교촌에프앤비㈜와 함께 조성한 '교촌1991 문화거리'가 최근 새단장을 마쳤다. 이 거리는 대한민국 치킨 프랜차이즈의 출발점이 된 교촌치킨 1호점이 있는 지역이다.교촌1991 문화거리는 구미종합터미널에서 동아백화점까지 약 500m 구간으로, 지난해 구미시가 명예도로로 지정한 '교촌1991로'를 중심으로 조성됐다. 총 18억 원(교촌 13억, 구미시 5억)이 투입됐으며, 평범했던 상업공간을 일상 속 쉼터이자 체험형 문화거리로 재탄생시켰다.거리 전체는 다섯 개의 테마존으로 구성됐다.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교촌구미웰컴존을 시작으로, 교촌 브랜드를 상징하는 치맥공원, 브랜드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교촌역사문화로드, 다양한 소스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교촌소스로드, 교촌과 구미의 특별한 인연을 담아낸 교촌구미로드까지 각기 다른 분위기와 주제를 담아냈다. 문화거리 중심에 있는 교촌치킨 1호점은 지난해 11월 리뉴얼 오픈했다. K-치킨의 성지로 유명한 교촌의 플래그십 매장인 이태원 '교촌필방'의 컨셉을 접목해 단장했다. 이는 교촌의 1,300여개 매장 중 유일한 사례로 1호점만의 가치를 담아낸 교촌의 맛과 역사를 느낄 수 있다.1호점에서만 판매하는 지역 한정 메뉴도 눈길을 끈다. 교촌의 시그니처 소스를 붓으로 직접 바르며 수제 양파튀김과 함께 즐기는 '교촌 구미 플래터', 치킨을 누룽지와 함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테이크아웃 메뉴 '치룽지' 등 오직 1호점에서만 판매하는 한정 메뉴도 만나볼 수 있다. 오는 7~8월에는 문화거리 준공을 기념해 교촌1호점 특화메뉴 할인 이벤트가 진행된다. 행사기간 동안 구미시청 카카오톡 채널을 친구 추가하면 교촌1호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쿠폰이 제공된다. 문화거리를 찾는 이들에게는 작은 즐거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교촌1991 문화거리는 구미시와 교촌의 특별한 인연이 만든 상생의 상징이자, 지역 문화와 관광의 새로운 구심점"이라며 "앞으로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홍성철 기자 thor0108@edaily.co.kr

2025.06.2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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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신세' 여성 정책, 이재명 정부에선 다를까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드디어 새 정부가 출범했다. 계엄으로 인한 정치적 혼돈과 경제의 덫, 극단적 좌우 사회갈등이 새 정부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이런 마음들이 통했는지,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의 향후 5년간 직무 수행 전망에 대해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무려 70%로 나타났다.이러한 높은 지지율은 국민이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 정부의 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성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여성 정책은 그 어느 정책보다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사회·경제적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정책이었다. 호주제 폐지 등 굵직한 여성 정책은 대통령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추진되기 어려웠다. 그런데 2030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21대 대선이건만, 선거 운동 기간에는 지난 20대 대선에 비해 여성 관련 공약이 두드러져 보이질 않았다. 모든 후보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은 “여전히 구조적 성차별이 계속되고 있어 여가부의 역할을 폐지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하겠다”라고 성 평등 거버넌스 체계 강화를 공약하며 희망의 여지를 남겼다. 그런데 벌써 여성계에서는 실망의 소리가 들린다. 대통령실 수석이나 정무직,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다시 ‘오륙남’(5060 남성)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서둘러 장관 인선에 전문성을 갖춘 여성 장관들을 대폭 임명해 이런 우려들이 정말 우려에 불과했기를 바란다. 성 평등 가족부를 천명한 정부는 성 평등 거버넌스를 위해 지난 정부들과는 조금이라도 개선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지난 3년을 돌아보다윤석열 전 대통령의 여성 정책 핵심은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대선 기간 중 어느 날 갑자기 윤 전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이 일곱 글자가 띄워졌다. 아무 설명도 없었다. 그리고 3년 내내 이 일곱 글자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윤 정부에서 임명된 여성가족부 장·차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여성가족부 폐지였다. 윤 정부 초기, 여성가족부 고위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성가족부 폐지 배경을 설명하고 찬성해달라는 취지였다. 여성단체 설득 등 여성가족부 폐지를 위한 활동을 일일 보고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도 이해는 간다. 폐지를 위해 간부들이 자발적으로 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몸담은 조직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낯선 일들이 반복되더니 드디어 장관을 임명하지 않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발생했다. 부처가 마음에 안 들면 장관을 임명 안 해도 된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기존에 해오던 성 평등 조사결과 발표도 갑자기 중단됐다. 여성가족부는 매년 중앙부처 본부·지자체 과장급, 공공기관 임원의 여성 비율 목표치와 이행실적을 발표해 왔다. 하지만 2022년부터는 발표하지 않았다. 왜 기존 업무를 중단했을까? 업무를 중단한다는 것은 정책 의지의 실종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것은 나만의 억측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새 정부에서는 성인지 감수성과 성 평등 정책 의지가 있는 장관을 빨리 임명하고, 중단됐던 성 평등 업무를 복원시키고, 젠더 갈라치기가 아닌 젠더 통합을 위해 노력해주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청한다. 나아가, 여성가족부의 발전적인 해체와 개편을 통해서 남성과 여성을 함께 포용하고 아우르는 부처, 젠더 갈등을 해소하는 부처, 국민의 사랑을 받는 부처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여성 정책을 넘어 성 평등으로우리나라는 그동안 ‘여성 정책’이라는 틀 안에서 성 평등을 논의해왔다. 여성 정책은 주로 여성의 권익 향상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여성 정책에서 성 평등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더 이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 평등하게 존중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시대의 변화와 함께, 여성 정책에도 조금씩의 변화가 이뤄져 왔다. 지난 2013년 여성발전기본법은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됐다. 내용과 법명 모두 개정됐다. 법 제2조에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참여와 대우를 받고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함으로써 실질적 양성평등 사회를 이루는 것이 기본 이념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특정 성별의 참여율이 현저하게 부진한 분야에 대해서 적극 조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가장 성별 참여가 부진한 분야는 어디일까? 바로 여성의 대표성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2024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정치 권한 분야 146개국 중 72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03위다. 22대 국회에서 여성의원 비율은 20.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다. 2023년 기준 여성 장관 비율은 15.7%(3명), 차관은 13.8%(4명)에 그쳤다. 중앙부처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은 11.7%로 10%대에 머물고 있다. 여성의 경영 참여도 마찬가지다. 성 평등의 첫걸음은 대표성 분야의 동등한 참여라고 본다. 여성계에서는 남녀 동수 내각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주요 직책에 여성을 임명함으로써 성 평등 내각을 위해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고 노력하고 여성가족부 장관은 임명하지 않았지만, 여성 장관을 3명이나 임명했다. 새 정부에서도 성 평등 거버넌스를 위해 전 정부들보다 진일보한 성과들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를 위하여경영 참여 분야도 여성의 참여율이 저조하다. 그래도 다른 분야보다 나은 점은 여성의 이사회 참여 확대를 위해 지난 2022년 여성 이사 의무화제도가 도입됐다는 점이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의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규정해 사실상 1명 이상의 여성 이사 선임을 의무화했다. 사실, 이 법은 특정 성으로만 구성할 수 없다고 돼 있어,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법은 아니지만, 현재 여성의 참여가 저조하므로 여성에게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이 법은 일부에서 오해하는 여성 할당 제도도 아니다. 리더스 인덱스 자료에 의하면,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의 경우 자본시장법 적용 이후 여성 등기임원은 2배 증가했다. 여성 이사 의무화제도의 효과가 톡톡히 나타난 셈이다. 그러나 세부 통계를 들여다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사외이사는 2020년 5.9%에서 2024년 17.2%로 급격하게 증가했지만, 사내이사는 2020년 2.4%에서 2024년 2.7%로 정체돼있다.이에 일각에서는 ‘여성 사외이사 1인 구색 맞추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처럼 새 정부는 여성 사내이사의 증가가 정체돼있는 점,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에만 한정됐다는 문제 제기 등에 대해 향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들의 선례를 보면,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와 관련해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 제도가 있다. 바로 기업공시제도다. 공시는 기업의 사업과 현황 등 모든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투자자나 주주의 의사 결정의 근거 자료가 된다. 앞서가는 나라들은 여성 인적자원의 육성 현황이나 임금 현황 등을 다 공시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도 기업공시제도를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국제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해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지침을 개정해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핵심 지표 중 하나로 포함했다. 기업의 인재 육성 및 관리 정책, 임원의 성별 다양성 및 여성 임원 육성 정책과 계획 등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투자자의 알 권리도 충족이 된다. 제도의 선제적 도입을 위해서는 다양성 공시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혜택 ▲공공 입찰 우선권 ▲정부 지원 사업의 참여 기회 제공 등 인센티브 부여 방안들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공공기관 상근 여성 임원, 5% 불과그런데 자본시장법상 기업공시 의무는 민간기업만 지고 있다. 공공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18년 법 개정안이 제출된 후 2년 반에 걸친 국회 심의를 거치는 동안 가장 많이 나온 질문 중 하나는 기업공시제를 공공기관도 아직 도입하지 않았는데 왜 민간기업이 먼저 시작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는 공공분야가 선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2020년 3월 국무회의에 보고된 여성가족부의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계획’에 따르면 공공기관 여성 임원은 22.1%로 비중이 적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비상근을 제외한, 상근 여성 임원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게다가 상근 여성 임원에 관한 정부 통계는 어느 순간부터 발표조차 되지 않아 찾기도 어려웠다. 민간 통계에 의존해야 했다.2024년 리더스 인덱스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공개된 공공기관 여성 임원 수를 전수 조사해 보도했다. 공공기관 여성 임직원 수는 2019년 35.4%, 2024년 39.3%로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임원 중 여성 비율은 2019년 21.3%에서 2024년 20.6%로 감소했다.세부적으로 임원을 상임과 비상임으로 구분해보니, 2024년 상임이사 총 393명 중 여성은 20명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금융기관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공공기관 여성 임원 확대를 위해 향후 정부에서는 통계를 발표할 경우 상근과 비상근을 분리해 발표하기를 바란다. 언제까지 민간 통계에 의존할 것인가. 나아가 여성 이사 최소 1인 의무화를 도입하는 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 다행스럽게도, 새 정부는 공약으로 공공기관 성 평등을 위한 성별 평등지표 반영 등 조직문화 개선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평등지표 만들기에만 그쳐선 안 된다. 이 지표가 제대로 활용돼야 한다. 지금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여성 임원현황은 두루뭉술한 정성 지표로 돼있다. 변별력이 없으니 있으나 마나다. 정량지표로 변경하든지, 단 1점의 가중치라도 주든지 개선해줄 것을 제안한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여성 정책은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성 평등에 중점을 둬 젠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정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란다. 지난 3년이 여성 정책의 답보 후퇴기였다면, 새 정부에서는 이것을 바로잡고 성 평등을 위해 한 단계 더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해주기를 바란다. 이번 정부의 성 평등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비전과 실질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젠더 갈등을 통합하고, 성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사회 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임을 우리 모두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25.06.22 10:01

7분 소요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 동남아시아에서 찾아야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올해 아세안(ASEAN)이 완성된다. 아세안은 1967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 등 5개국이 창설 구성원으로 출범했다. 1984 브루나이, 1995 베트남, 1997 라오스·미얀마, 1999 캄보디아가 차례로 가입해 현재 10개국이 회원으로 있다.동남아시아는 아세안 10개국 이외에 인도네시아와 섬을 나누고 있는 동티모르까지 총 11개국이 있다. 동티모르는 올해 10월 정식으로 아세안 회원국이 될 예정이다.동티모르의 인구는 130만명,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500달러에 불과하다. 아세안 내에서도 최빈국이지만 동티모르의 가입에는 이유가 있다. 아세안의 지정학적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미·중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세안 국가 방문동남아시아를 완전한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은 바쁘다.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발표하자 미국과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 중국 주석은 4월 14~18일까지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3개국을 이례적으로 방문했다. 말레이시아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이며,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미국으로 부터 상호관세율 46%, 49%를 각각 통보받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방문의 의도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그때 베트남과 ▲공급망 강화 ▲철도 협력 관련 협정 등 45건의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말레이시아와는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신기술을 비롯해 경제·무역·투자 등 여러 분야에서 31개 협정을 체결했다. 캄보디아와도 무역·투자·금융·수자원 등 분야의 37개 협정에 서명했다.5월 21일에 중국은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완료하면서, 소위 ‘3.0버전’을 통해 경제적 결속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정에는 ▲디지털 경제 ▲녹색 경제 ▲공급망 연계성 ▲통관 절차 ▲표준 및 기술 규정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 ▲경쟁 및 소비자 보호 ▲ 중소기업 지원 ▲경제 및 기술협력 등 9개 사항이 추가되었다. 금번 개정된 FTA는 중국중심의 블록화 성격이 강하다. ▲디지털 경제 ▲녹색 경제 ▲표준 및 기술 규정은 중국 중심의 기술 및 표준으로 제정될 가능성이 있다. 아세안의 주요 미래 산업에 있어 중국 의존도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시진핑 주석이 동남아시아를 다녀간 직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4월 27일부터 4일간 베트남과 필리핀을 방문했다. 올해 1월에 이어 3개월 만의 동남아시아 이례적 방문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동남아시아에 관한 관심이 멀어진 사이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외교정책을 통해서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방문 직후 5월 초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이시바 총리의 특사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였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베트남·인도네시아·싱가포르를 방문해 40건 이상의 협정과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프랑스는 이번 방문을 통해 미∙중 경쟁 속 동남아시아의 신뢰할 수 있는 대안적 파트너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 6월 베트남을 방문하였으며, 또 럼 베트남 서기장이 5월 초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 심화를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하였다.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다자외교의 목적으로 인도네시아가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협의체 브릭스(BRICS)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은 파트너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K-컬처에 우호적인 아세안…한국 정부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한국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사이 동남아시아를 둘러싼 주요국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세계 3위의 인구, GDP로는 세계 5위를 자랑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 또한 매우 중요하다. 동남아시아는 중국 다음으로 한국의 두 번째 교역 대상이며, 국내 기업들의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주요 지역으로 꼽힌다.이제 한국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외교적으로 강대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때보다 동남아시아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동남아시아를 외교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도 매우 적절하다.중국의 경우 동남아시아를 자국 상품을 팔기 위한 시장으로 보고 있으며, 남중국해 갈등 등 안보에서도 충돌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중국산 저가 상품이 들어올 때 자국의 산업이 붕괴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다. 그들은 한국을 발전모델로 삼고 있으며, K-컬처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매우 높아져 있다. 한국의 앞선 기술도 배우고 싶어 한다.아세안의 최대 외국인투자(FDI)국가는 중국이 아닌 미국이다. 중국은 미국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그것도 몇 개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의 투자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 자리를 한국이 일부 매어줄 필요도 있다. 한∙아세안 협력기금이 있긴 하지만 이를 개편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모델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개발은행 형태의 협력 금융사를 설립할 때다. ▲투자 ▲한국의 기술 공유 ▲제도 개선 등 통합적∙종합적∙실질적 협력 모델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는 대기업 등 다양한 참여자가 포함되어야 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우리의 진심을 보여주고 진정한 동반자로의 인식을 제대로 심어줄 수 있다면,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동남아시아에서 확보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2025.06.22 09:00

4분 소요
불장, 그리고 위험한 빚투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요즘 중견기업에 다니는 지인의 얼굴이 환하게 펴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주식시장 얘기를 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증시가 상승세를 타면서 투자한 주식도 오름세를 보여 끓던 속이 일부 풀렸다는 겁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종 악재에 떨어지기만 하는 국장을 탈출해 미장으로 옮겨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상황이 360도 바뀌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국장이 그야말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 취임 당일인 6월 4일 2770이었던 코스피는 가파르게 올라 보름이 지난 20일 3000을 뚫었는데요, 2022년 1월 3일(3010.77) 이후 3년 5개월여 만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리스트가 급부상했음에도 주가 상승세를 꺾지 못할 정도로 국장은 불장입니다. 주요 요인으로는 대선 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새 정부의 2차 추경 등 경기부양책 및 증시 활성화 대책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 꼽힙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불법 부정거래 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배당 확대 등 밸류업 정책 추진 등을 재차 강조하며 대선 공약이기도 한 ‘코스피 5000 시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에 화답하듯 증시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는데요, ‘팔자’ 일변도였던 외국인들도 ‘사자’로 돌아서 국장 활황세에 가세했습니다. 심지어 국장에 투자하는 미국의 상장지수펀드(ETF)에도 이달 들어 1조원이 넘는 자금이 순유입됐는데요, 1년 반 만에 월간 기준 최대치입니다. 일부 과열 양상도 보이고 있는데요,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가 늘고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12일 현재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8조8500억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지난 5월 30일 잔고와 비교해 5761억원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고 남은 금액인데,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며 불장에 편승해 위험한 빚투에 나선 투자자가 늘고 있는 겁니다. 이달 들어 은행의 신용대출도 하루 평균 증가액이 지난달 두 배가량으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증시 빚투’ 때문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습니다.워낙 ‘코스피 5000’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 빚투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요,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금 유입으로 숨통을 틀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반면, 지금의 빚투가 크게 한몫 잡겠다는 투기성도 적지 않아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바라는 증시 투자는 명확합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주식 투자를 통해 중간 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면 기업의 자본 조달도 쉬울 것이고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선순환될 것”이라며 “그 핵심 축에 증권시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적인 증시 투자의 모습인데요,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여서 당국은 지금의 빚투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할 겁니다.

2025.06.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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