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슈
韓 경제 위기 “구조적 저성장과 정치 불안이 만든 파고…리빌딩 필요”[이코노 인터뷰]
- [경제 대전환의 시대 K기업이 사는길]⑥
박양수 대한상의 SGI 원장 인터뷰
위기 알면서도 방치해 누적된 문제 폭발
‘적응’ ‘생산성 혁신’ 필요…집 값 띄우기 꼼수는 피해야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을 짊어지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은 특히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복합 위기’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운 지정학적 위기 ▲고령화와 저출산이 불러온 구조적 저성장 ▲여기에 계엄과 탄핵‧조기대선이라는 정치 불안까지, 국내외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충격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관세정책으로 세계 각국이 무역장벽을 높이는 각자도생 시대로의 전환은 ‘심각한 위기’를 일깨워준 트리거가 됐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생존을 위한 우리나라의 경제 시스템을 리빌딩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으로 한국의 경제 상황을 세밀히 살피고 연구했던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고민하는 손꼽히는 경제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 위기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박양수 원장은 “단순한 외부 충격이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가 일시적인 ‘블랙스완’이었다면 지금의 문제는 알면서도 대응하지 못했던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누적된 문제가 터진 것”이라는 것이다.
박 원장은 “수출 주력 품목은 지난 20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 이는 효율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어찌보면 역동성을 잃은 징후”였다고 했다. 그런데 급격히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우리 경제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탄소중립 전환, 인공지능(AI)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기존 산업 구조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현실이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박 원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계엄령·탄핵 등)이 증폭되면서 위기의식이 극대화됐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올린 관세 전쟁으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됐다고 박 원장을 평가했다. 특히 미국의 25% 상호관세 부과와 같은 트럼프발 통상 압박은 단기 충격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실물경제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대응 방안은 있을까. 박 원장은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피해 기업에 직접 지원을 늘리고, 기업들은 중장기적으로 수출 다변화와 현지 직접투자 확대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 등 주요 산업이 미국 현지에서 ‘보완재’로 기능할 수 있도록 포지셔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는 실리 외교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일도양단의 이분법적인 선택보다 첨단 산업은 미국과 협력하고 일반 산업은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선택적 디커플링’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중‧일 혹은 한‧일 간의 협력을 통한 시장 확대도 전략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도 했다. 세계 무역 질서속에서 미국을 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경제 규모가 큰 한국과 중국, 일본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미국을 압박해 경제 제재 허들을 낮추고 협상력을 높이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구감소, 적응과 생산성 혁신으로 대처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저성장 압력에 대해서는 단순한 출산 정책 변화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평가했다. 박 원장은 “많은 선진국도 출산율 반등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경제가 성장할수록 저출산에 의한 저성장 압력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이는 ‘적응’ 전략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AI와 자동화를 통해 1인당 생산성을 끌어 올리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우 고령자도 노동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 ▲고숙련 외국 인력 유치 ▲연금개혁 ▲노동시장 유연화 ▲재정 개혁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해결해 한국의 경제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리빌딩 코리아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 뼈대를 유지하면서 새롭게 고치는 리모델링처럼 국가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이 과정에서도 성장이 필요한데 부채주도 성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정치적 인내심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채주도 성장이란 나라나 개인에 빚을 늘려주면 일시적으로 자본이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소비를 많이 하게 하고, 이를 통해 경기에 활력을 주는 정책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극심하게 가라앉을 때 극약 처방으로 이런 정책을 사용하면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그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짧아 경기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에 그치게 해야 한다고 평가한다. 박 원장은 부채주도 성장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부동산 집 갑 띄우기’를 지적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시도는 장기적으로 산업경쟁력을 해치는 꼼수 ”라며 “실물경제 중심의 구조 개혁과 점진적 부동산 조정만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리빌딩 코리아 프로젝트가 필요한 적절한 시기는 언제인가 하는 질문에 “어쩌면 경제 위기라는 의식이 전 국민적으로 공유된 지금이 바로 개혁의 적기”라고 박 원장은 답했다.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을 도입하고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첫 번째 국가는 아니다. 일본이 앞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어떻게 고난을 겪었는지, 또 어떻게 이를 헤치고 다시 일어서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일 수 있다”며 “이를 참고삼아 우리가 변화하고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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