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왜 그들은 실리콘밸리를 떠나는가 [실리콘밸리의 사람들]
- AI 붐 속에서도 가속화되는 탈(脫)실리콘밸리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의 진짜 이유

[최성안 2080벤처스 대표] “여기가 진짜 혁신의 수도인가요?”
실리콘밸리에 처음 도착한 이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이다. 구글·메타·애플·넷플릭스·엔비디아…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들이 다 모여 있는 곳.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면 거리엔 노숙자 텐트가 늘어서 있고, 점심 한 끼가 30달러(약 4만2000원)를 훌쩍 넘는다. 대중교통은 낙후돼 있으며, 밤에는 치안 불안으로 발걸음이 뜸해진다.
이곳은 1950~60년대 반도체 산업으로 출발해 ▲닷컴 ▲모바일 ▲AI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기술혁신의 성지였다.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한 인재풀과 ‘빠르게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문화’가 혁신의 토양이 됐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그 흐름에 뚜렷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023년 기준 공실률 30%에 육박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약 87만명에서 약 81만명으로 약 6만4000명(7.3%) 감소했다. 이는 캘리포니아에서 인구 20만 명 이상인 지역 중 가장 큰 감소폭이다.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 확산으로 많은 기업들이 고비용의 샌프란시스코 오피스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2023년 기준 오피스 공실률이 30%에 육박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평균 원룸 월세는 2024년 기준 약 3300달러, 투룸은 약 4500달러로 미국 내 최고 수준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중간 가격 주택을 구입하려면 연소득 26만달러 이상이 필요하며, 이는 2019년보다 30% 이상 오른 수치다. 창업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나 젊은 창업자, 중산층에게 주거비 부담은 매우 큰 현실적 장애물이다.
캘리포니아 주 소득세는 최고 13.3%로 미국 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과도한 ▲법인세 ▲고용 규제 ▲교통난 ▲도심 노숙자와 범죄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업과 인재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중견 기업이나 급성장 중인 스타트업일수록 캘리포니아의 규제 환경은 부담이다.
치안 역시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팬데믹 이후 샌프란시스코는 약국·편의점·소매점 등에서의 조직적 절도 사건이 급증했다. 도심에서 대낮 강도 사건이 일어나도 경찰 대응이 늦거나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졌다. 일부 기업은 직원들의 출퇴근 안전 문제로 도심 사무실을 줄이거나 아예 철수하는 선택을 했다.
테슬라·오라클·HP 엔터프라이즈(HP Enterprise) 등 대표적인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최근 본사를 텍사스 오스틴, 휴스턴 등으로 이전했다. 이들은 ▲낮은 세금 ▲저렴한 주거비 ▲친기업적 환경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텍사스는 주 소득세가 없고, 물가가 낮으며, 기업 환경도 친시장적이다. 실제로 오스틴은 ‘실리콘 힐스(Silicon Hills)’라 불릴 만큼 테크 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신생 테크 허브’로 재편 중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는 금융과 부동산 중심 도시였지만, 최근에는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이 모이는 ‘신생 테크 허브’로 재편되고 있다. 2023년 기준, 마이애미로 이전한 기술 기업 수는 팬데믹 이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은 저렴한 세금, 높은 생활 만족도, 빠른 정책 대응을 이유로 이주를 선택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주소 이전을 넘어 ‘어디에서 일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재설계에 가깝다. 더 많은 기업이 “비싼 곳에서 존재감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면, 굳이 남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의 AI 열풍은 실리콘밸리에 다시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엔비디아, 오픈AI 등 AI 중심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오피스를 확장하고 있다. AI 기업들의 오피스 임대 면적은 170만 평방피트를 넘었다. 2024년 실리콘밸리 지역의 VC 투자액은 약 900억달러로, 미국 전체 투자금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2021년 27% 수준에서 다시 반등한 결과다.
또한, 글로벌 인재 유입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실리콘밸리는 국제 인재가 많은 곳이었지만, 최근 AI 붐과 함께 그 수는 더 늘었다. 2024년 기준 실리콘밸리 인구의 41%가 외국 출신이고, 기술직 종사자의 66%가 이민자다. 특히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국 출신 인재들이 AI와 반도체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대, 카이스트 출신 인재들이 구글·테슬라·메타 등에서 일하고 있다. 쿠팡이나 뤼튼테크놀로지스 같은 스타트업은 실리콘밸리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도 점점 글로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장소’에 집착하는가?
한국 사회는 중앙집중형 구조와 학벌 중심 문화가 뿌리 깊다. 서울이라는 물리적 장소는 오랜 시간 동안 기회와 성공의 상징이었고, 자산 형성도 부동산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래서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경력, 재산, 지위와 직결된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된 지금조차 우리는 ▲서울 ▲강남 ▲본사에 묶인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변화는 이 고정관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곳은 더 이상 ‘모여 있는 장소’가 아니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이자 사고방식이다. 혁신은 특정 도시에 국한되지 않고, 텔아비브, 방갈로르, 자카르타, 서울 같은 도시들로 복제되고 있다. ‘디지털 실리콘밸리’는 물리적 본사를 넘어 존재한다.
이제 중요한 건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연결성과 민첩성이다. 우리는 묻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 조직은 아직도 본사 중심, 회의 중심, 보고 중심의 사고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어디에 있든 빠르게 연결되고, 실험하고, 실행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사람들은 단순히 도시를 떠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방식의 일과 삶, 그리고 조직 문화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디에 있든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톱 액셀러레이터·VC 2080벤처스의 공동대표다. 글로벌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연결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문가이며 '실패하는 Vs 성공하는 기업'의 공동저자다. 실리콘밸리·일본·사우디아라빙 등에서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 ▲M&A ▲글로벌 진출 전략을 지원하고 있으며, SpaceX 등의 투자자로도 활동 중이다. 해외 스타트업 두 곳에서 실무를 맡아 성공적인 엑시트를 이끌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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