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IMF·닷컴 위기 넘어…‘메이드 인 코리아’ 신화 쓴 수출 대기업들
- [KOSPI, 한국 경제 지도를 다시 그리다]②
외환위기 후 기업 해체·구조조정 본격화…산업 지형 흔들린 KOSPI
통신·IT 거품 꺼진 뒤…반도체·자동차가 시총 판도 이끌어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1980년대 정부 주도 경제 성장과 정책 금융의 상징이던 한국종합주가지수(KOSPI)는 1990년대 말부터 2000
년대 중반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경험했다.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이어진 닷컴 버블 붕괴는 은행·상사·건설업종이 주도하던 과거 시장의 근간을 뒤흔들었고, 격변의 한복판에서 한국 경제는 반도체·휴대폰·자동차 등 첨단 수출 제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축을 세워나갔다. 이 시기 KOSPI는 단순 주가 지수를 넘어, 위기를 기회로 바꾼 한국 경제의 역동적인 지형도 변화를 생생히 그렸다.
IMF 외환위기와 닷컴 버블, 격랑 속 KOSPI의 생존 투쟁
1997년 말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최대 경제 위기인 IMF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연쇄 기업 부도 ▲금융기관 파산 ▲환율·금리 급등은 실물경제를 급격히 위축시켰고, 외국인 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KOSPI는 전례 없는 폭락을 경험했다. 대우그룹 등 대기업 해체와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시가총액 상위권 구성도 빠르게 변했다.
실제로 KOSPI는 1997년 말 376.31포인트에서 1998년 6월 장중 277포인트까지 밀려났다. 같은 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5.8%라는 충격적 수치를 기록하며 성장 기반 자체가 흔들렸다. 그러나 ▲정부의 강도 높은 구조개혁 ▲기업들의 필사적 생존 노력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장 회복의 동력으로 작용하며 점차 회복의 기미를 보였다. 이후 KOSPI는 1998년 6월 저점을 확인한 후 연말 562.46포인트까지 회복하며 산업 구조와 시총 구도 대전환의 서곡을 알렸다.
다만 외환위기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과 벤처 육성 정책은 1999년부터 국내 자본시장에 예상 못한 과열, 즉 닷컴(.com) 버블을 불러일으켰다. 코스닥 중심의 인터넷·정보기술주 투자 열풍은 KOSPI로도 확산됐다. 특히 SK텔레콤, KT(당시 한국통신), 데이콤 등 통신기업들이 시총 상위에 포진하는 등 산업 지형 변화를 예고했다.

KOSPI는 기술주 급등세에 힘입어 1999년 말 1028.07포인트, 2000년 1월 4일 장중 1059.04포인트를 기록하며 버블의 정점으로 향했다. 시가총액은 1997년 말 71조원 수준에서 1999년 말 350조원으로 2년 만에 다섯 배 가까이 팽창했다.
그러나 가파른 상승세는 미국 나스닥 시장 붕괴와 함께 국내 닷컴 버블도 순식간에 꺼뜨렸다. 2000년 4월 17일 KOSPI는 하루 만에 93.17포인트(-11.63%) 급락했고, 연말 지수는 504.62포인트로 마감하며 연 낙폭이 50%를 넘는 기록적 조정을 보였다.
여기에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는 시장에 다시 충격을 가했다. 9월 12일 KOSPI는 전일 대비 64.97포인트(-12.02%) 하락한 475.60포인트로 역대 최대 일일 낙폭을 경신했다. 하지만 거품이 걷히는 과정에서 실적과 기술력을 갖춘 우량 기업만 생존하는 시장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 펀더멘털 중심의 가치 투자 경향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수출 제조업의 약진과 새로운 KOSPI 지형도 구축
닷컴 버블 붕괴 후 시장은 투기적 과열에서 벗어나 실질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에 주목했다. 단기 유행이 아닌 실질적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수출 제조업체들이 자리했다. 이들은 외환위기 후 강도 높은 체질 개선과 적극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으로 KOSPI의 새 주역으로 부상했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지속한 반도체 초격차 전략으로 2000년대 초반 세계 D램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 2002년부터는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선두를 굳혔다. 휴대폰 역시 ‘애니콜’로 국내 시장을 석권한 뒤 북미·유럽 중심으로 빠르게 외형을 키웠다. 특히 2002년 출시한 SGH-T100 모델(일명 이건희폰)은 글로벌 누적 판매 1000만대를 돌파하며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의 해외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에 1999년에는 한국전력을 제치고 KOSPI 시총 1위에 등극했다.
현대자동차는 품질 개선과 브랜드 신뢰 회복에 총력을 기울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미국 '10년·10만 마일 보증제'로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고, 중형차·스포츠유틸리티차(SUV) 중심 라인업은 북미·유럽 및 신흥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2003년에는 국내 자동차 업계 최초 연간 수출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후 글로벌 생산망으로 실적 기반을 다지며 2000년대 초반부터 시총 상위권을 유지했다.
두 기업의 질적 성장은 KOSPI 시총 순위에 직접적 변화를 가져왔다. 공기업·통신업종 주도 양상은 2000년대 중반 IT·제조업 기반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명확히 전환됐고, 2005년 KOSPI는 연말 1379.37포인트로 마감하며 외환위기와 닷컴 버블 조정을 모두 회복했음을 알렸다. 당시 시총 상위 5개 기업(삼성전자, 국민은행, 한국전력, 현대차, POSCO)은 변화된 산업구조를 뚜렷하게 반영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자본시장 개방 후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이 2004년 기준 약 40%를 넘어서며 시장 내 핵심 투자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풍부한 유동성 공급과 함께 기업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며 시장 선진화에 일조했다.
2005년 KOSPI는 더 이상 과거 정책 기반 산업 구도의 단순 반영이 아니었다. 수출 중심 산업 실적과 글로벌 경쟁력, 국제 수요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기적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기업 주도 민간 성장 시대가 본격 개화하며 한국 경제의 ‘새로운 지도’를 시장 스스로 그리기 시작한 중요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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