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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증권, 한국 경제 구조 개혁의 마스터키 [스페셜리스트 뷰]
-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 구조 개선…실물 기반 토큰증권으로 투자 기회 확대
미국·일본 등 경쟁국은 시장 선점…조속한 제도화 필요

되돌아보면 한국 경제는 마치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오랫동안 부동산이라는 한 줄기의 뿌리에 기대어 자라왔다. 전체 가계 자산 중 70% 이상이 부동산에 고정되어 있으며, 그 규모는 무려 6800조원에 이른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인 집중도다. 반면, 코스피 시장의 시가총액은 2200조원 수준으로, 자본시장은 부동산보다 세 배 가까이 작다.
이런 불균형은 여러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됐다. 한국전쟁 이후 토지와 건물이 가장 확실한 자산으로 인식됐다,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지속됐다. 금융시장이 미성숙했던 과거에는 부동산이 거의 유일한 자산 축적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단지 자산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자금이 흐르지 못한 채 한 곳에 정체되면, 물줄기 잃은 강처럼 경제는 숨을 쉬지 못한다.
기업은 마른 땅에서 자본을 구걸하게 되고, 무거운 주거비는 소비와 저축을 짓누른다. 젊은 세대는 전세 대출과 주택 담보 대출로 허리가 휘고, 창업과 투자보다는 부동산 투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결국 경제는 역동성을 잃고 지속 가능성이라는 숨결조차 위태로워진다. 이는 개별 가계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 경제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구조적 위기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
이재명 대통령은 이 낡은 구조를 정확히 꿰뚫었다. "주택이 투자 수단, 또 투기 수단이 되면서 주거 불안정을 초래해왔다"며 "주식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어 경제 전체가 선순환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단순히 주식시장 하나를 살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자산의 흐름 자체를 굴곡진 강에서 직류 흐름으로 바꾸겠다는 거대한 구조개혁의 예고다.
그의 정책 비전은 명확하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 구조를 다양화하고, 자본시장을 통해 실물경제와 금융을 선순환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계는 안정적인 자산 형성의 기회를 얻고, 기업은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물려주겠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그러나 기존의 주식시장만으로는 그 변화의 바람을 담기엔 그릇이 작다. 지금의 자본시장은 상장기업 중심이며 실물자산 즉 부동산, 콘텐츠, 예술품 등에는 여전히 투자 장벽이 높다. 무엇보다 상장기업은 전체 기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기업은 자본시장 접근이 제한적이다. 또한 개인 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투자 대상도 한정적이다.
기존의 주식시장은 유동성과 투명성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투자 대상의 제한으로 인해 주식의 매력이 한정 지어졌다. 부동산 투자를 원하는 개인 투자자는 리츠(REITs) 정도의 간접 투자 수단밖에 없고, 미술품이나 콘텐츠 같은 대안 자산에 대한 접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는 담아낼 그릇의 크기를 바꿔야 할 때다. 그 해답이 '토큰증권(Security Token Offering, STO)'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토큰증권, 새로운 금융 언어의 탄생
토큰증권은 실물 또는 금융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토큰으로 만들고 이를 법적으로 '증권'으로 인정받아 자본시장에서 유통하는 새로운 금융 언어다. 핵심은 이 증권이 허공의 약속이 아닌 실물자산이라는 단단한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신속한 유통이 기존 증권의 안정성과 만나 새로운 시대의 증권으로 태어난 셈이다.
전통적인 증권과 토큰증권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존 증권은 종이나 전자장부에 기록되어 중앙집중식 시스템에 의존한다. 반면 토큰증권은 블록체인에 기록돼 분산원장의 투명성과 불변성을 갖는다. 거래 과정에서 중개기관의 역할이 최소화되고, 이론적으로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 또한 스마트 계약을 통해 배당이나 이자 지급 같은 복잡한 권리 관계도 자동으로 처리된다.
이 새로운 증권은 수억원에 달하는 벽 너머에 있던 자산을, 수십만원 단위로 조각내 우리 모두가 손에 쥘 수 있다. 강남의 고급 오피스텔, 제주도의 펜션, 유명 작가의 미술품, 인기 웹툰의 저작권, 혁신 기업의 특허권과 과거에는 박물관 유리관처럼 바라만 봐야 했던 자산들이 이제는 디지털 증권이라는 다리를 건너 모두의 투자 포트폴리오 안으로 들어온다.
실물의 안전성과 시장의 유동성을 동시에 품은 이 구조는 투자자가 부동산을 내려놓지 않고서도 새로운 흐름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부동산 투자를 선호하는 투자자라면 토큰증권을 통해 다양한 부동산에 분산 투자할 수 있고, 주식 투자를 선호하는 투자자라면 부동산이나 대안 자산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는 투자 선택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글로벌 기회의 관문
뿐만 아니라 토큰증권은 한국의 콘텐츠, 기술, 브랜드 같은 고유한 자산들을 전 세계 투자자들과 연결하는 관문이 된다. K-pop, K-drama, K-beauty로 대표되는 한류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무형 자산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제한적이지만, 토큰증권을 통하면 방탄소년단의 음반 로열티, <오징어 게임>의 해외 판권,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가치 등에 전 세계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작은 토큰 하나가 세계 어느 투자자에게도 닿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한국의 자산'이 아니라 '글로벌의 기회'다. 런던의 펀드매니저가 서울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뉴욕의 개인 투자자가 제주도 카페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자본의 국경을 허물고 한국 경제의 글로벌 통합을 가속화한다.
디지털 금융 허브 그 한가운데에 한국이 설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금융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5G 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기술 등 디지털 자산 시장의 기반이 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토큰증권이라는 새로운 금융 상품이 더해지면 한국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디지털 자산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
이 구조적 변화는 단지 기술의 진화가 아니다. 이는 곧 자본주의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자, 자산 형성의 기회를 확장하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부동산 투자는 최소 수억 원의 목돈이 필요했고, 미술품이나 골동품 투자는 전문 지식과 인맥이 필수였다. 벤처 투자는 더욱 폐쇄적이어서 소수의 엘리트 투자자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토큰증권은 이 모든 장벽을 허문다. 월급쟁이도 강남 오피스텔의 지분을 가질 수 있고, 대학생도 유명 작가의 작품에 투자할 수 있다. 주부도 혁신 기업의 성장에 동참할 수 있고, 은퇴자도 안정적인 부동산 수익을 누릴 수 있다. 지금까지 몇몇 사람들만이 들고 있던 열쇠가 이제는 우리 모두의 손에 쥐어진다. 자산 민주화의 첫 페이지인 셈이다.
이는 단순히 투자 기회의 확대를 넘어 사회 전체의 부의 재분배 효과를 가져온다. 소수가 독점하던 프리미엄 자산의 수익이 대중에게 분산되고, 자산 소유의 기회가 확대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고, 중산층의 자산 형성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는다.
자금조달 생태계의 변화
토큰증권은 자금조달의 지형도도 바꾼다. 예전엔 기업공개(IPO), 벤처캐피털, 은행 대출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이제는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길 위에서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 기존 자금조달 방식은 높은 문턱과 복잡한 절차, 긴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혁신적이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업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금융권에서 외면받기 일쑤였다.
토큰증권은 이런 한계를 극복한다. 사업 아이디어가 좋다면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직접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중개기관의 역할이 최소화돼 자금조달 비용이 대폭 줄어들고, 절차도 간소화된다. 또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실시간 소통을 통해 투자자와 기업 간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그 가능성이 현실로 증명되고 있다. 스페인의 '베셀프 브랜즈'는 자사 지분 전부를 토큰화해 수천 명의 투자자와 연결됐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대중 참여형 지분 투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크로아티아의 '그레이프 바이크'는 19억원의 자금을 토큰증권으로 조달해 전기 자전거 사업을 성공시켰고, 결국 포르쉐에 인수됐다. 투자자들은 20% 수익이라는 결실을 얻었다.
이런 성공 사례들은 토큰증권이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실제로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실용적인 금융 도구임을 보여준다.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게는 글로벌 자본시장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투자자에게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제도화를 향한 움직임
정은보 한국거래소(KRX) 이사장은 "가계 자산이 금융으로 넘어올수록 자본시장이 커지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어진다"며 토큰증권의 빠른 제도화를 강조했다. 이 발언은 단지 미래를 위한 추상이 아니라, 토큰증권이 이미 자본시장 안에서 인정받는 현실적 수단임을 증명한다. 금융당국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서 토큰증권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는 것은, 이것이 더 이상 실험적인 기술이 아니라 정책적 우선순위임을 의미한다.
한국거래소는 이미 토큰증권 상장을 위한 기술적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 시스템 구축 ▲투자자 보호 방안 마련 ▲시장 조성자 제도 도입 등 종합적인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또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토큰증권 관련 규제샌드박스를 운영하며 안전하고 투명한 제도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디지털 자산 허브 구축'과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은 토큰증권이라는 매개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실물 기반의 확장성과 블록체인 기술의 접목, 그 안에서 제도권 금융의 신뢰가 자리하는 이 구조는 디지털 자산과 자본시장 정책의 접점이다. 둘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단이다.
반면 해외는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미국은 2017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토큰증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제도화의 문을 열었다. 이후 꾸준한 규제 정비를 통해 현재 전 세계 토큰증권 거래소 63개 중 15개가 미국에 있다. 특히 나스닥과 뉴욕 등 전통적인 거래소들도 토큰증권 거래를 준비하고 있어 곧 본격적인 시장 개화가 예상된다.
일본은 2020년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을 통해 토큰증권을 제도권 내로 편입시켰다. 이후 발행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서며 아시아 지역 토큰증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토큰화에 집중해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를 확대했고, 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도 크게 개선했다.
홍콩은 2025년 전 주기적 토큰증권 제도화를 완료하며 중국 본토와 연결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디지털 자산 허브 구축을 위한 종합 계획을 발표했고, 토큰증권을 그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7년부터 MAS(통화청)가 체계적인 제도를 구축해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정부 주도의 명확한 제도화와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다.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장 참여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 결과 글로벌 투자자들과 기업들이 몰려들며 각국의 금융 허브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국제 금융기관들의 전망도 매우 긍정적이다. 시티그룹은 토큰증권의 글로벌 시장 규모를 2030년까지 약 6700조원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재 글로벌 주식시장 규모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더욱 구체적으로 국내 시장만 해도 36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전망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실제 시장 데이터와 기술 발전 속도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성숙 ▲디지털 자산에 대한 인식 개선 ▲규제 환경의 정비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시장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디지털 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토큰증권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이미 거대한 흐름은 시작됐다. 무엇보다 토큰증권은 정치권, 정부, 금융당국, 업계 모두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드문 디지털 자산이다. 암호화폐나 대체불가토큰(NFT) 같은 다른 디지털 자산들과 달리 토큰증권은 실물 기반의 안전성, 낮은 투기성, 자본시장법 체계 속의 공시와 보호 등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혁신이다.
실행의 순간
법제화만 남았다. 지금, 바로 지금이 실행의 순간이다. 토큰증권은 더 이상 기술의 예언이 아니다. 이미 눈앞의 현실이고, 한국 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한 열쇠다. ▲부동산 편중 완화 ▲자본시장 확장 ▲중소기업 자금 조달 ▲디지털 자산 산업 육성 등 모든 목표가 토큰증권이라는 한 길 위에서 만난다.
정부는 이미 필요한 정책적 의지를 표명했고, 금융당국은 제도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업계는 기술적 준비를 완료했고 투자자들은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 과감한 실행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도 늦출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해답은 이미 손안에 있다. 다만 열쇠를 돌릴 결단이 남았을 뿐이다. 토큰증권이 열어갈 새로운 금융 생태계 속에서,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경제 구조 전체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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