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일반
‘서울의 달은 누구를 비추나’…추석 달빛 아래 집값과 계층 이야기[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추석 앞두고 국토부는 숫자로 희망 포장, 서울시는 속도로 자신감만 내세워
진정한 풍요는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집, 사회적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데서 시작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국회의원] 추석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으레 둥근 보름달을 떠올린다. 달은 늘 모양을 바꾸지만, 결국 꽉 차오른다는 믿음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믐달(초승살) 상현달(하현달)에도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달은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달빛은 예전과 다르다. 특히 2025년 추석의 달은 어둡고 무겁다. ‘달’하면 떠오르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1994년 인기리에 방영된 ‘서울의 달’이다. 이 드라마는 80년대 서울의 약수동·옥수동 일대 달동네가 무대다. 한탕을 꿈꾸다 끝내 좌절한 홍식(한석규), 소박한 삶을 지켜낸 춘섭(최민식)의 이야기는 당시 서민들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담아냈다.
달빛은 가난했어도 ‘성실히 살면 내집 한 칸 마련하고 먹고 살 수 있다’는 최소한의 희망을 비춰줬다. 지금 그 달동네는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로 변했고, 꽤나 중산층이 늘어난 강남으로 접근이 용이한 동네가 됐다. 원주민 일부와 세입자는 밀려났지만 이 개발로 내집마련과 중산층 입성에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낡고 좁은 골목,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던 동네가 몰라보게 주거환경이 개선되는 변화가 있었다. 개발의 부작용도 있었지만 성과도 분명히 있던 시대였다.
그러나 2020년대 서울의 달은 풍요가 아니라 불안과 욕망의 상징이 됐다. 치솟은 집값 앞에서 청년과 중산층의 내집마련은 점점 멀어졌고 그나마 전세도 전세사기로 인한 보증과 대출 축소로 월세로 내몰리고 있다. 그들에게 달은 더 이상 희망도 기다림의 상징도 아니다. 반면 이미 집을 가진 이들에게는 올 추석 ‘희망과 욕망의 보름달’이 될 것 같다. 정부와 서울시가 한달 사이로 내놓은 주택공급 확대정책이 ‘서울 집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숫자의 마술, 속도의 환상, 그리고 빠진 비용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9.7 주택공급대책’을 내놨다. “2030년까지 수도권 135만 호 공급”이라는 화려한 숫자는 언뜻 희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부도가 예견된 약속어음에 가깝다. 실제 서민들이 묻는 건 “언제 입주할 수 있나, 내가 감당할 수 있나”이지 단순한 물량이 아니다. 대규모 택지 개발은 최소 10년 이상 걸리고, 공공 주도의 공급은 LH 재무건전성과 행정 지연이라는 벽에 막혀 있다. 속도감 있는 추진이라는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무엇보다, 집을 사려는 이들이 지불할 수 없는 수준의 공급은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다.
이런 비판 속에 서울시는 곧바로 ‘한강벨트 20만 호 공급’을 발표했다. 국토부의 청사진보다 상대적으로 구체적이고, 인허가 절차 간소화로 사업 기간을 최대 6.5년 단축하겠다고 했다. 속도 면에서는 눈에 띄는 제안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서울시 대책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양과 속도는 짚었지만, 비용·지불가능성·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빠져 있다. 새로 지어질 한강변 아파트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싶다. ‘어떤 계층’만을 위한 대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강된 세입자 대책, 그러나
서울시는 이번에 세입자 대책도 일부 포함했다. 과거에는 세입자가 중간에 바뀌면 손실보상에서 빠졌지만, 이제는 조합이 추가 보상을 하면 서울시가 용적률 인센티브로 되돌려 주기로 했다. 이전보다 나아진 장치다. 그러나 이것이 구조적 해법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공공임대 공급 확대와 함께, 민간공급을 늘리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만약 재건축초과이익환수나 분양가 상한제의 수정없이 서울의 한강벨트 공급이 추진된다면 과연 주택이 예정대로 완공될수 있을까? 그 사이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한 소유자들은 주택을 처분하고 떠날수 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의 대책은 여전히 자금력을 갖춘 소유자와 조합 중심이고, 세입자 대책은 갈등 완화용 장치에 머물 뿐이다.
1980~90년대 재개발은 희생과 갈등이 있었지만, 생활환경 전반의 개선이라는 공공적 성과도 남겼다. 지금의 한강벨트 재건축은 공공성보다는 사업성 개선과 자산 가치 상승이 중심이다. 용적률 완화는 단기적으로 집값을 크게 밀어 올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최종 판매가격은 다시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공급되는 주택은 서민 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일 게 뻔하다.
‘서울의 달’이 다시 희망으로 돌아오려면
서울에서 집은 더 이상 거주 공간이 아니다. 사는 곳이 곧 계층이 되는 사회가 굳어지고 있다. 좋은 학군, 한강 조망, 유명 단지의 이름은 부모 세대 자산의 증표이고, 자녀에게는 교육과 기회의 사다리가 된다. 만약 2025년에 ‘서울의 달’이 다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홍식의 한탕은 재개발 ‘딱지’ 가 아니었을까. 투기가 성공하는 엔딩일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와 제도의 산물이지만 말이다. 춘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가 작은 가게와 집을 얻는다면, 그것은 성실함 때문이 아니라 재개발 대상지라는 행운과 제도적 틈새 덕분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성실과 노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대, 이것이 오늘의 서울이기 때문이다.
추석 밥상에선 언제나 집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애는 언제 집을 살 수 있나?”, “전세 또 올랐다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부모 세대는 “옛날엔 버티면 집 하나는 마련했지”라며 회상하지만, 자녀 세대는 고개를 젓는다. 이런 상황에서 영끌을 해서라도 내집마련에 성공한 이웃집 자녀의 사례가 절망과 박탈감을 더 심화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추석을 앞두고 국토부는 숫자로 희망을 포장했고, 서울시는 속도로 자신감만 내세웠다.
과연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집인지, 나에게는 기회가 오는지는 어느누구도 답하지 못하고 있다. 올 추석 달을 보며 이렇게 묻고 싶다. 지금 서울의 달은 누구를 비추고 있는가? 그 달빛이 일부 자산가들의 전용 조명이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희망의 달이 아니다. 진정한 풍요는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집, 사회적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데서 시작된다. 90년대 ‘서울의 달’ 처럼 달빛이 다시 희망으로 돌아오는 것, 아마도 올 추석 우리의 가장 절실한 소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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