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쾌적함은 기후가 아니라 기술이다[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냉방과 방충 역시 도시 인프라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국회의원] “너네 집도 그거 생겼어?” 올여름 도시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그거’는 러브버그, 초파리, 정체불명의 날벌레다. 창틀에 붙고, 커튼 사이를 날아다니며, 자동차 보닛에도 눌러 붙는다. 나만 겪는 줄 알았던 불쾌감이 도시 전역을 감싸고 있었다.
그 와중에 들려온 건, 은퇴 후 전원생활을 택한 지인이 털어놓은 사투였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곧 잡초와 벌레와의 전쟁이고, 그 싸움은 한겨울을 제외하곤 계속된다고 했다. 결국 도심이든 전원이든, 공간은 달라도 벌레는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됐다.
한편으론,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에서도 눅눅한 공기와 끈적한 피부 감각이 불쾌함을 더한다. 기온은 연일 35도를 넘고, 밤이 되어도 열대야는 끝나지 않는다. 나무 그늘도 더 이상 시원하지 않고, 공원은 사람 대신 벌레가 차지한다. 자연은 이제 반갑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에어컨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대부분의 건물에 냉방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고효율 냉방 시스템은 아직 보편적이지 않다. 특히 중소형 상가나 업무용 빌딩, 노후 주택 등은 비용 문제와 구조적 한계로 에너지 효율이 낮은 시스템에 의존한다. 냉방 장치는 있어도 실질적 쾌적함을 보장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냉방’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도시 쾌적성의 조건, 싱가포르의 기술
싱가포르는 연평균 기온이 30도 이상, 아침 습도는 90%에 육박하는 전형적인 열대기후 도시다. 그런데도 도시 전체가 쾌적하다. 벌레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단지 기후와 식생의 차이가 아니라, 도시 관리 기술의 차이다. 싱가포르가 보여주는 쾌적함의 비결은 크게 두 가지다: 고효율 냉방 시스템과 정교한 해충 관리 기술이 그것이다.
싱가포르의 모든 건물은 ‘에너지 라벨링’ 기준에 따라 고효율 냉방 장치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정부는 기준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하고 있으며, 2025년부터는 에어컨의 최소 효율 기준(MEPS)도 강화된다. 더 적은 에너지로 더 강력한 냉방을 구현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 스마트 제어 기술이 결합된다. 사용자가 없는 공간은 자동으로 냉방이 줄어들고, 외부 기온·습도에 따라 실내 냉방이 조정된다. 쾌적함은 기술로 제어되고, 에너지 절감도 동시에 실현된다. 이처럼 ‘냉방’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 도시의 기본 인프라로 간주된다. 쾌적한 도시란, 기후에 휘둘리는 공간이 아니라 기후를 기술로 조율하는 공간인 셈이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의 47%가 녹지일 정도로 조경 면적이 넓다. ‘바이오필릭 시티’(Biophilic City)를 도시 비전으로 내세우며, 건물마다 수직정원을 유도하고, 공공녹지를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벌레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비결은 통합 해충 관리 시스템(IPM, Integrated Pest Management)에 있다. 단순한 살충이 아니라 유충 단계에서의 차단, 서식지 제거, 실시간 모니터링과 기술 기반 방제를 통합한 방식이다. 센서가 부착된 도심에서는 해충 밀도가 높아지면 자동으로 드론이 출동하거나 방역팀이 현장에 대응한다.
화분 받침의 자동 배수, 모기 유충이 생기지 않도록 설계된 조경 구조, 빗물 흐름까지 계산된 포장재와 도로 설계 등 이 모두가 벌레를 불편하게 만드는 도시 설계다. 해충 방제는 산업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에는 Rentokil Initial, PestBusters, Killem Pest 등 NEA(국립환경청) 인증을 받은 전문 업체들이 활동하며,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 방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는 이 산업을 도시환경 관리의 핵심 파트너로 보고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기후위기 속 한국 도시는 모두에게 쾌적한가
우리나라 도시들도 무더위에 대응하기 위해 쿨루프, 미스트 분사기, 도로 살수차, 공공 냉방시설 등 다양한 장치를 도입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여름철 도심 생활은 불편하다.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인도, 방치된 화단, 비효율적인 냉방 시스템, 에너지 관리가 부재한 중소규모 건물들은 해충에게는 서식처가 되고,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의 원인이 된다.
도시의 녹지는 늘어났지만 이를 유지·관리할 인력은 줄었고, ‘자연 친화적’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공간들은 오히려 해충의 온상이 됐다. 쾌적함은 단순히 기후 조건의 결과가 아니라, 기술과 제도의 문제이며, 도시가 어디에 자원을 우선 배분하느냐의 정책적 선택이다. 에너지 효율을 갖춘 냉방기기와 스마트 공조 시스템은 분명히 발전해왔지만, 그것은 여전히 일부 계층에게만 실현 가능한 선택지다.
쾌적한 여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본값이 아니라, 점점 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프리미엄’이 돼가고 있다. 대형 빌딩과 부유한 가구는 기술을 통해 불쾌한 여름을 통제하지만, 소규모 건물과 저소득층은 여전히 노후한 에어컨과 환기구조에 의존한다. 보조금 제도가 있긴 하지만, 초기 설치비용과 이사 시마다 반복되는 이전비, 건물 구조상의 제약 등은 기술의 혜택을 가로막는다. 국가는 이제 냉방과 방충 역시 도시 인프라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이를 공공정책의 핵심 요소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생활 쾌적성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곧 삶의 질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술의 혜택이 ‘가능한 권리’로서 모든 사람에게 보장돼야 한다.
도시 쾌적성은 ‘선택 가능한 기술’이다
싱가포르의 사례에서 보듯, 쾌적함은 자연이 허락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의지와 기술, 도시관리 시스템의 성숙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더운 나라가 불쾌한 것은 기후 탓이 아니라, 도시가 감당하지 못한 기술적 한계일 뿐이다. 벌레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신문지를 들기보다, 그 벌레가 왜 이 도시에 살고 있는지를 묻는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도시의 구조와 시스템이 벌레의 생존을 허용하고 있다면, 그 역시 정책의 대상이다. 그리고 여전히 개인의 선택으로만 남아 있는 고효율 냉방 시스템의 혜택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산시키는 일 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쾌적함은 ‘가능한 선택지’다. 문제는 그 선택을 도시가 모든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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