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4호 강순옥 명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순창 고추장 해외 유명 세프의 러브콜 받아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단순한 현지 취재 시리즈가 아닙니다. 삶과 노동,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 한데 녹아든 시간을 기록하는 여정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간을 빚어내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그 손끝에 깃든 철학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4호 강순옥 명인입니다. [편집자주]
강순옥 명인.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한 사람의 철학이 수십 년을 거쳐 브랜드가 되고, 마침내 세계로 나아갔다. 전북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 해가 뜨기 전부터 장독대를 돌며 온도와 색을 살피는 이곳의 장인은 오늘도 같은 리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원칙, 그리고 한결같은 고집.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4호 강순옥 씨가 지켜온 것은 단순한 고추장이 아닌, ‘시간과 신뢰가 빚은 정체성’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수많은 한국인의 식탁에 담긴 기억과 철학이 세계의 문화로 인정받은 것이다. 강순옥 명인은 그 소식을 듣던 날, “가슴이 미어지게 기뻤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장은 그냥 음식이 아니여. 이 땅의 햇살, 바람, 사람의 정이 다 들어간 그릇이지.”
브랜드는 철학으로 완성된다
순창장본가. 겉으로는 단출한 고추장 체험관처럼 보이지만, 이 공간은 전통이 현대적 가치로 진화한 플랫폼이자 한 장인의 브랜드가 구축된 현장이다. 강 명인은 가장 먼저 ‘원료’를 이야기한다. 사용하는 콩, 고추, 소금까지 전부 100% 국산이다. 그는 지역 농가와 계약을 맺고 고품질 원료를 수급하며, 품질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관계의 가치를 강조한다.
“장이란 건 땅이랑 사람, 시간이 같이 만든다 해도 틀린 말이 아녀. 그 속에서 진짜 맛이 나지.”
여기서 주목할 건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다. 온도계나 센서가 아닌, 햇빛의 각도와 장독의 냄새, 손끝의 촉으로 장을 읽는다. 그것은 경험이 아니라 철학이고, 반복이 아닌 통찰이다.
이 장인의 ‘브랜딩’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매해 수천 명이 방문하고, 외국 요리사들이 배우기 위해 찾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일관된 원칙이, 결국은 시장에서 브랜드가 되는 까닭이다.
강 명인은 발효를 ‘기다림의 예술’이라 말한다. 해발 300~500m의 산세, 유등천의 맑은 물, 서해산 천일염을 정제해 쓴다. 모든 요소는 발효 속도를 조절하고 맛의 균형을 맞추는 핵심이다.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것이다.
“장은 서둘면 안 돼. 제 시간이 있고, 그걸 존중해줘야해.”
이 느림의 철학은 어쩌면 오늘날 가장 부족한 리더십일 수 있다. 단기성과보다 긴 호흡의 감각, 효율보다 신뢰를 중시하는 경영. 고추장이라는 발효 식품이 보여주는 이 원리는, 상품을 넘어서 조직 운영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통찰이다.
고추장의 재료인 된장메주. 장독은 철학을 담는 그릇이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었다. 장 담그기는 단순한 요리 기술이 아니라, 삶을 나누고 전수하는 문화다. 마을 어르신들과 메주를 띄우고, 햇살 아래 장독을 닦던 그 시간들은 지역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간의 언어’였다.
이 문화는 지금도 강 명인의 브랜드에 녹아 있다. 그는 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함께 장을 담그고, 발효 과학에 대한 교육을 병행한다. “배워야 지켜지고, 느껴야 이어진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 체험을 넘어, 브랜드의 고객이자 다음 세대를 만드는 투자이기도 하다. 체험 기반의 공감형 콘텐츠, 브랜드의 문화 자산화, 다세대 타깃 교육 프로그램. 이 모든 요소는 대기업이 수년간 고민하는 전략과도 연결된다.
순창 고추장은 이미 해외 셰프들과 요리학교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일본의 유명 셰프들은 “이건 소스가 아니라 완성된 요리”라며 극찬했다. 강 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B2B 교육형 수출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해외 레스토랑에 고추장을 기반으로 한 메뉴 개발도 진행 중이다. 그는 장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계화’를 멈추지 않는다.
“전통은 멈춰 있는 게 아녀. 시대랑 같이 걸어야 살아있는 거지.”
장에서 배우는 지속가능한 브랜드 운영 원칙 3가지
기다림의 가치를 아는 브랜드가 강하다. 한 사람이 50년 넘게 지켜온 장맛은 이제 국가의 문화유산이자 세계의 공통 언어가 되었다. 변화가 빠른 시대, 오히려 ‘느림’은 깊이로, ‘고집’은 철학으로 전환되고 있다. 강순옥 명인의 손끝에서 완성된 고추장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투자해도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많다는 것을 증명한 실천이다. 경영이란 결국 신뢰와 기다림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는 기호다. 그리고 순창의 조용한 장독대에서 그 가치는 여전히 숙성 중이다. 한 그릇의 장에는, 오늘날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단어인 정직, 지속성, 공감, 그리고 철학이 담겨 있다.
강순옥 명인은 원료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콩, 고추, 소금까지 모두 국산이며, 염도까지 직접 조율한다. 그의 원칙은 단순하다. “내 이름을 걸고 파는 건데, 제일 좋은 걸 써야지.” 브랜드의 핵심은 품질이 아닌 ‘책임’이다.
공장에서 3일 만에 완성되는 고추장이 있는 시대에, 그는 1년을 기다린다. 기계가 아니라 시간과 감각이 맛을 만든다는 그의 철학은, 브랜드 운영에서도 ‘지속 가능성과 정직함’을 실현하는 유효한 전략이다.
장 담그는 문화를 체험 콘텐츠로 확장하고, 해외 셰프와 협업해 메뉴 개발에 나선다. ‘지키기만 하는 전통’이 아니라, 시장과 연결되는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속 가능성이다.
순창장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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