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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은퇴는 끝이 아닌 설계의 시작…퇴직연금 오래 쓰는 법
- [100세 시대, 퇴직연금 안녕하십니까]⓸
인생 후반기, 퇴직연금 인출 전략 고민해야
생각 못한 복병 ‘세금’, 연금 꺼내는 순서도 중요

[김민령 우리은행 연금사업부 과장] 보통 ‘은퇴’를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을 나누는 지점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제는 후반전이 더 긴 시대다. 100세 시대의 은퇴는 끝이 아니라, 다시 설계해야 할 두 번째 경기가 됐다. 국민연금만으로는 20~30년의 노후를 감당하기 어렵기에, 퇴직연금의 중요성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의료비·주거비·여가비 등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마지막 월급’이라 불리는 이유다.
퇴직연금 수익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퇴직연금을 단순히 ‘쌓아두는 돈’이 아니라 ‘운용하는 자산’으로 인식하는 흐름 또한 강해지고 있다. TDF(타깃데이트펀드), 글로벌 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이 다양해지며 2024년 말 기준 실적배당형 퇴직연금 자산은 전년 대비 26.2% 증가했다. 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포인트가 하나 있다. 바로 그 자산을 "언제, 어떻게 꺼내 쓸 것인가"다.
인출기 전략은 다르게…쌓을 때보다 중요한 꺼낼 때의 전략
퇴직연금은 적립기와 인출기의 전략이 달라야 한다. 적립기에는 수익률 극대화가 핵심이라면, 인출기에는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과 자산의 점진적 감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은퇴자들이 퇴직 직후 자산을 모두 현금화하거나 원리금보장형 상품에만 집중하는 실수를 한다. 이 방법은 단기적으로 원금 보존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에 취약하고 일정 금액을 꾸준히 찾아가는 구조에서는 자산이 빠르게 고갈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인출기 맞춤 실적배당형 자산을 편입하는 이른바 ‘인컴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TIF(타깃인컴펀드), 월분배 ETF처럼 지속적인 현금흐름에 초점을 둔 상품은 안정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실적배당형 자산과 안정형 자산을 조합해, 퇴직연금의 원금만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인컴의 유입을 통해 마치 자산이 천천히 살아 움직이도록 설계하는 잔존가치 보존 전략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AI 기반 일임 포트폴리오를 활용해, 상황에 맞게 비중을 자동 조절하는 솔루션도 등장하고 있어 스스로 운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이도 자산운용이 가능하다. 이제는 인출기를 단순히 ‘꺼내는 시기’가 아닌, 또 하나의 자산운용기로 인식하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연금은 꺼내는 순간 세금도 시작된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을 운용할 때는 세금에 대한 체감이 크지 않지만, 인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세금은 현실이 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IRP 계좌를 해지해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비율은 약 90%에 이른다고 한다. 선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인출 시 납부해야할 세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IRP는 과세이연 구조다. 쌓을 때가 아닌 꺼낼 때 세금이 발생하며, 꺼내는 방식에 따라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연금 형태로 받을 경우, 퇴직소득세의 30%를 감면받을 수 있다. 세액공제 받은 개인부담금에 대해서는 3.3~5.5%의 연금소득세만 부과된다. 반면 일시금으로 찾으면 퇴직소득세를 한 번에 내야 하고, 세액공제 받은 금액은 기타소득으로 간주돼 16.5%의 세금이 부과된다. 일시금 수령보다는 가능하면 연금 수령이 세금을 아낄 수 있는 길이다.
연금 수령 시 10년 이상 받는 전략 또한 중요하다. 이 경우 퇴직소득세 감면비율이 40%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당장 연금이 급하게 필요하지 않더라도 소액부터라도 연금 수령을 일단 시작해두는 것이 절세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연금 인출 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종합소득 과세’다. 사적연금소득이 연간 1500만 원을 초과하면, 다른 소득과 합산돼 종합소득세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 주택임대소득, 금융소득 등이 함께 발생하는 은퇴자라면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이때 인출 순서에 따라 종합소득세 합산과세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IRP는 ‘세액공제 받지 않은 개인부담금 → 퇴직금 → 세액공제 받은 부담금 및 수익’ 순으로 인출되는데, 인출되는 재원이 세액공제 받은 부담금 및 수익으로 바뀌는 시점부터 사적연금에 포함이 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은퇴기에는 예기치 못한 세금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상품 구조와 세제 규정, 인출 방식 등을 개인이 모두 이해하고 설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경우 퇴직 직전 또는 직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산 배분, 인출 시점, 절세 전략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한 번의 판단 실수로 수백만 원의 세금을 더 내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은퇴는 일회성이지만, 인출은 장기전이다.
연금의 진짜 기능 ‘잘 쌓는 것’보다 ‘잘 쓰는 것’
퇴직연금은 잘 가꾼 정원과 같다. 너무 일찍 열매를 모두 따면 가을이 허전하고, 그대로 두기만 해도 시들어간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 꺼내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퇴직연금은 상품마다 세제 혜택이 다르고, 인출 시기나 방식 선택에 따라 내야 할 세금도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많은 은퇴자는 이 구조를 잘 알지 못한다. 업무에선 베테랑이었던 이들도, 퇴직 후 자산 운용 앞에서는 누구나 초보자가 되기 쉽다. 하지만 연금을 어떻게 꺼내 쓰느냐에 따라 내가 그간 쌓아온 자산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바로 해지하기보다는, 한 번 더 고민하는 시간이 분명히 필요한 이유다.
그동안 고생한 당신의 은퇴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당신의 휴식이 더 윤택해지려면, 당신의 자산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연금은 그저 소비하는 돈이 아니라, 가치를 지키며 오래도록 흐르게 해야 할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어떤 순서로,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꺼낼지를 고민하는 일은 곧 ‘두 번째 생활 설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내 계좌에 쌓인 숫자들은 ‘지금까지’의 결과이자 ‘이제부터’의 자원이다. 이제 내 퇴직연금을, 내 삶의 속도에 맞춰 꺼내 쓰는 연습을 시작해보자. 그 계획이 당신의 두 번째 인생을 오래도록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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