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축 진검승부]②
산업화 시대, 서울의 ‘계획 도시’…국내 최초 아파트지구로 탄생
도시 계획적 실험과 고급 주거지 개발 목적 동시 추진

‘신현대아파트’라 불리는 현대 9·11·12차가 들어선 압구정 2구역은 현대건설이 1982년 시공한 고급 아파트 단지다. 총 27개 동, 1900여 세대로 구성된 해당 아파트는 단지는 전용 85~135㎡의 중대형 평형 위주로 구성됐다.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보행자 전용 동선을 갖춘 조경을 갖추고 판상형과 타워형을 혼합해 입체적으로 건물을 배치했다. 대규모 녹지를 포함한 단지는 한강 조망권을 갖춘 계획형 아파트로 평가된다. 5층 아파트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15층 높이로 지어진 이 단지는 한강변 스카이라인을 새로 만들어냈다.
산업화 시대 인구 쏠림·주택 공급 위해 계획 주거지 건설
이런 아파트 단지가 나온 배경은 한국의 경제 부흥기‧산업화와 직결된다. 1970년대 후반,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서울로 몰렸고 이는 인구 증가와 주택 부족이라는 문제를 만들어냈다. 서울은 성장하는 도시였고 동시에 성장통을 겪으며 혼란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선 도시였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서울시는 도시 ‘설계’라는 시도를 감행한다. 1976년 ‘영동아파트지구 종합개발계획’을 통해 ‘아파트지구’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당시 서울의 중심은 영등포였다. 영등포를 기준으로 강남은 ‘영동’으로 표현됐다.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인 영동은 행정적 명칭이었다. 오늘날의 강남구‧서초구‧송파구가 그 범위에 포함된다. 서울시는 이 영동지역을 계획적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단순한 택지 공급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도로‧학교‧공원‧상업시설까지 아우르는 ‘생활권 단위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핵심이었다. 이런 계획을 시도하고 현실화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아파트 외의 용도는 허용하지 않았고 모든 개발을 하나의 지구 단위로 묶어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강에 인접하면서도 서울 중심부인 영등포와 가깝고, 일부 고급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압구정은 이 계획의 중심부였다. 압구정은 ‘도시계획적 실험’과 ‘고급 주거지 개발’이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부합되는 지역이었고 그 안에 신현대아파트가 들어선 압구정2구역이 있었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강남에 교육과 교통 인프라를 집중시켰다. 주요 행정기관까지 이전하며 강남을 ‘서울의 미래 도시 모델’로 육성했다.
배선혜 박사의 논문 ‘‘아파트지구’ 초기 계획 지침 분석을 통한 1970년대 단지계획 기법 연구’를 보면 압구정 2구역은 도시계획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로 평가된다. 단지 외곽이 아닌 중앙에 상업시설을 배치하고, 차량보다 보행자 중심의 구조가 적용한 이 단지의 구조는 이후 위례·과천 등 신도시 설계의 모델이 됐다.
중요한 점은 이 도시계획이 현대건설이라는 민간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신현대아파트는 단지 설계부터 시공,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현대건설이 주도했다. 조경과 배치, 건축 품질 모두 ‘고급 아파트’라는 개념을 서울 도심에 처음 도입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현대건설 주도로 지은 ‘15층 고급 아파트’…헤리티지 강조 배경
현대건설이 ‘압구정 현대’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나선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스토리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건설은 지난 2월 ▲압구정 현대(압구정 現代) ▲압구정 현대아파트(압구정 現代아파트) 등 총 4건의 상표권을 출원하고 우선심사를 진행했다. 지난 4월에는 특허청으로부터 기등록 상표와의 유사성에 대한 보정이 필요한 의견제출통지서를 접수했다.
현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의 최고 가격은 100억원을 뛰어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9차 아파트 전용면적 183㎡는 6월 1일 기준 101억원(5층)에 거래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으로 지정돼 전세 세입자가 있는 상태에서 집을 사는, 이른바 ‘갭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셈이다. 약 1년 전 같은 면적의 세대가 72억원에 거래된 것을 고려하면 1년 만에 30억원, 약 40% 가까이 올랐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강남, 압구정동이라는 지역적 상징성과 한강변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산가들이 향후 부동산 가치가 오를 것을 염두에 두고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차원에서 투자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코스피, 중동 갈등에 3000피 밑으로…2992.20로 출발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2025 K포럼’, 틱톡으로 본다…단독 라이브 중계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속보]이란 외무 "푸틴과 공동의 도전과 위협 논의할 것"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샌드박스’ 뚫은 한국ST거래…소상공인 토큰증권 시대 연다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브릿지바이오, 상장폐지 위기 탈출…비트코인 투자사로 변신[바이오맥짚기]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