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온라인 플랫폼은 기술이자 주권...‘디지털 챔피언’ 키워야 [스페셜리스트 뷰]
- 스무트 홀리법 100년 만에 미 보호무역주의 회귀
디지털 서비스 무규제 확산·미국 플랫폼 독점 심화
플랫폼은 데이터 생태계와 AI 등 미래 기술의 산파

1930년 미국 정부가 교역국에 평균 40%의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 홀리법’을 시행하자 당시 JP모건 사장이던 토마스 라몬트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상호 경쟁적 관세 정책이 민족주의를 자극해 국제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우방인 영국과 프랑스 등을 상대로 2만 개 이상의 수입품에 살인적인 관세를 부과했고, 영·불은 보복관세로 맞대응했다. 세계적으로 교역이 위축되며 미국의 수출입은 1933년 65%(1929년 대비)나 급감하며 대공황의 늪은 더욱 깊어졌다. 미국은 자충수의 우를 범했다.
유럽도 무사하지 못했다..제1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지워지지 않은 1930년대, 피해 복구로 고전하던 유럽 경제는 미국의 관세 공격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곳간이 빈 유럽 곳곳에선 민족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고, 국제사회는 불안에 빠졌다. 독일 국민들은 파시스트 정권에 힘을 몰아줬다. 결국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빈 체제 이후 체결된 수많은 국제법은 배고픔과 힘의 논리 앞에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스무트 홀리법이 시행된 지 100년 가까이 흐른 2025년,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또다시 고관세 카드를 꺼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공장을 미국에 짓고, 물건 팔려면 과중한 세금을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변국들과의 힘의 불균형을 지렛대 삼아 미국 배 불리기에 나선 것이다. 우방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만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의 주인이 다른 누가 되든 미국은 교역 질서 재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의 30%를 차지하는 등 수출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한 데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어서다.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중국을 배제한 공급사슬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 대상과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미국의 선택과 대응은 꽤 분명해 보인다. 무역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신뢰는 이제 유통기한이 다한 듯하다. 국제질서의 재편이 예상된다. 대비가 필요하다.
국제 사회에서 상호 간 신뢰가 떨어지고, 국내 정치적으로 보호무역이 득세하며 ‘외주 종료’와 ‘내재화’의 양상이 두드러진다. 싼 값에 생산된 재화의 수입을 중단하고 자체 생산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자국 내 생산·공급을 통해 산업 기반 복원과 일자리 창출을 꾀하고 있다. 국가 간 비교우위를 바탕에 둔 제품 수출입은 결과적으로 세계적으로 생산성·효율성 증대에 기여했지만 자국 내 산업 기반 붕괴와 공동화 현상을 초래했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4월 30일(현지시간) 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구매·운전하는 자동차의 19%만이 미국산 변속기와 엔진을 갖고 있다”며 “미국의 제조업 기반을 복원해야 한다. 독일·일본·한국·멕시코가 가져간 제조 역량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 엘리트들의 생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조업 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분야의 갈등도 첨예하다. 미국의 ‘무역장벽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식재산권 보호는 물론 외국인 투자 제한 등 자본·서비스 분야 허들을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e커머스·디지털무역 분야에서는 데이터 현지화 요구, 차별적 디지털세 등을 통해 미국 온라인 플랫폼 기업 보호와 글로벌 세금 정책의 주도권을 쥐려는 모습이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는 기술 주도권과 국가 안보의 중요성이 함께 커졌다.
온라인 플랫폼과 같은 IT 서비스는 그간 자유무역시대 축복을 받아 항공·관광·교육·영화처럼 별다른 저항 없이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특히 미국과 같은 기술 선진국이 서비스 트렌드를 주도하며 하나의 서비스에 다수 국가 사용자들이 종속되는 경향이 날로 심해져 규제 필요성이 커졌다. 자체 디지털 환경을 갖추지 못하면 미래 산업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란 위기의식도 커졌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위기 의식을 느낀 국가들을 중심으로 ‘정보 주권(Information Sovereignty)’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은 온라인 플랫폼 분야 이슈에서 공공의 적 취급을 당하고 있다.
유럽, 인터넷 환경과 규제 역설로 미 플랫폼 종속
가장 큰 정보 주권 위협을 느끼고 강하게 대응에 나선 곳은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를 시행했는데, 다분히 미국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DMA 적용 대상은 온라인 중개·검색·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11개 분야에서 지난 3년간 역내 연 매출 75억 유로(약 12조 원) 이상 또는 시가총액 750억 유로(약 123조 원) 이상인 기업이다. 알파벳·아마존·애플·바이트댄스·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등 총 6개사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외산 플랫폼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고, 이익의 일정 금액을 사회로 환원하겠다는 취지다.
실제 디지털 환경만 놓고 보면 유럽은 미국에 종속돼 있다. 웹 트래픽 분석 사이트 스탯카운터(StatCounter) 등에 따르면 유럽 검색엔진에서 구글의 시장 점유율은 91%(2024년 8월 기준)에 달하고, e커머스 시장에서 아마존의 점유율은 35%(2023년 기준)나 된다.
유럽이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서 미국에 종속된 것은 스타트업 성장 속도가 부진했고, 과도한 역내 규제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1990년대 닷컴열풍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를 근거지로 성장한 온라인 플랫폼들은 스케일업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향했다. 유럽은 미국에 비해 인터넷 인프라 보급이 느리고, 벤처 투자 문화가 떨어져 무혈 입성이 가능했다. 미국 온라인 플랫폼들은 유럽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으며 '선점 효과(first-mover advantage)'와 '네트워크 효과'를 확보했다. 시장지배력을 확보했고, 토종 도전자들의 등장을 꺾었다.

이 결과 유럽은 인공지능(AI)·양자컴퓨팅의 시대 뒤처지기 시작했다. 토티스 미디어(Tortoise Media)의 2024 글로벌 AI 지수를 보면 10위 안에 유럽 국가는 4위 영국(29점), 5위 프랑스(28점), 7위 독일(26점) 3국에 불과하다. 지수 차이도 1위 미국(100점)에 현격하게 떨어진다.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을 작게 해석하면 정보의 창구, 소통의 창으로 볼 수 있고, 크게 해석하면 국가 커뮤니티의 인프라 역할을 한다. 국가 단위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독점할 수 있는데 유럽은 이런 채널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구글은 어느 국가보다도 유럽 시민들의 생각, 소비, 정치 성향까지 잘 알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곧 데이터 저장소며, 이는 기술 플랫폼으로 성장해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사티아 나델라 MS 대표가 “기술 플랫폼은 모든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클라우드, AI, 그리고 연결된 플랫폼을 통해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프론티어를 열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난 2010년대 미국과 유럽 경제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2015년 이후 분기별 경제성장률(전기 대비)을 살펴보면 유럽은 2020년 3분기와 2021년 2·3분기 단 세 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0%대, 혹은 마이너스 성장률에 머물렀다. 라이벌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이 기간 분기당 1~2%대에 달한 것과 대조된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독자 플랫폼 생태계 구축의 명분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유럽의 선례를 학습한 중국은 넷플릭스·구글·메타의 자국 내 서비스를 원천 봉쇄하고 웨이보·아이치이 같은 자국 서비스를 육성했다. 그 결과 중국은 독자적 플랫폼 생태계를 갖췄다. 더 나아가 이제 동남아시아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도 미래 기술 역량을 갖추기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기술 패러다임 투자의 귀재로 평가받는 김동환 UT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AI 분야는 자본력과 데이터를 가진 소수 국가와 그렇지 않은 대다수 국가로 양극단화 될 것”이라며 “한국은 소수 국가 대열에 간신히 발을 들였다. 앞으로 체계적인 투자 문화 조성과 데이터 플랫폼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플랫폼은 모든 사람의 행동과 생각·감정·선택이 데이터로 바뀐 저장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부와 일, 놀이, 소통을 모두 컴퓨터·모바일 단말기를 통해 온라인에서 소화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한 데이터는 서비스의 고도화를 넘어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든다. 앱·콘텐츠 제작자 생태계는 물론, 광고·금융·물류 인프라와 같은 산업 시스템을 구축한다. 나아가 AI 인프라로 성장해 AI 기업, 로봇산업, 디지털 헬스케어 등 차세대 산업 육성의 토대를 마련한다. '디지털 내셔널 챔피언(Digital National Champions)'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토종 플랫폼 없이 AI 강국도 없어, 국내 플랫폼 보호해야

저명한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미래 기업은 모든 정보 기술을 다루는 ‘e테크놀로지스’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e테크놀로지스는 특정 분야의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넘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네트워크로 연결돼 데이터를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AI·클라우드 컴퓨팅·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을 통섭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한다. 온라인 플랫폼이 단순한 IT회사가 아닌 ‘디지털 문명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테슬라가 전기차·우주기술·로봇·클라우드 등 서로 다른 기술 분야를 엮으며 e테크놀로지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전 세계에 클라우드 엔터프라이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주요 IT 기업들은 자체 클라우드 서버를 구축하고 있다. 힘들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회사·공장 운영의 노하우와 데이터, 산업 핵심 가치 등을 스스로 보유해 관리 노하우를 내재화해야 한다는 필요가 있어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최근 “데이터센터를 다른 나라에 두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뇌를 주는 것과 같다”며 “도로 등 기본 인프라가 없으면 자동차 산업이 클 수 없듯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같은 기반 시설은 AI 산업에 필수 요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보호무역주의로 알 수 있듯 외주 시대는 날로 저물고 있다. 상대국을 가난하게 만들거나 경쟁력을 끌어내려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힘의 논리’가 가득한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 플랫폼은 국가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자 AI 등 핵심 기술의 발판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수준의 AI 기업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국가 간 경쟁력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플랫폼은 ‘디지털 주권 기반시설’로서 유럽의 실패는 반면교사, 중국의 성공은 좋은 선례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부족한 기술을 외부에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디지털 챔피언을 키워 국가 커뮤니티의 생존에 기여 해야 할 때다. 국내 온라인 플랫폼들은 그간 온갖 정쟁에 휘말려 규제와 역차별을 받으며 기술 패러다임 변화 대응에 더딘 측면이 있다. 최근 국내 온라인 플랫폼들은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상륙한 거대 해외 플랫폼과 생사를 둘러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e테크놀로지스가 등장할 수 있도록 국가적 단속은 접어두고 국민적 지원 속에 디지털 역군을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놀유니버스의 커뮤니케이션실 실장으로 중앙일보에서 국제경제·IT·스타트업 기자로 활동했다. 기술과 비즈니스가 미래를 앞당긴다는 믿음으로 고려대에서 과학관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대학생 시절 e커머스와 외식 스타트업을 창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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